[인천시론] 한국과 팩트풀니스

최근 지인의 소개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읽었다.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이기도 한 한스 로울링의 저서 ‘팩트풀니스(Factfulness)’(김영사, 2019.3). 전 세계 40개국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이 책에서는 한국은 건강, 소득 면에서 세계 최상위층 국가로 분류된다.

풍부한 테이터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소득과 수명을 그래프화한 ‘달러 스트리트’와 ‘물방울 도표’를 보면 한국은 일본보다 허약하고 미국보다 건강하며, 이스라엘이나 스페인보다 부유하다. 한국은 4단계 국가 중에서도 굉장히 건강하고 부유한 나라다. 그런데도 일부는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거나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스 로울링은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으로 인해 팩트에서 벗어난 오해와 편견, 부정적 세계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예를 들어 극적이고 선정적인 뉴스는 ‘공포 본능’과 ‘부정 본능’을 자극하고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한다.

팩트풀니스, 즉 사실충실성이란 용어를 통해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보다 우리에게 전달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세상이 나빠 보이는 건 느낌 탓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더 큰 그림, 팩트를 기본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우리의 착각과 달리 세상은 나날이 진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차상위계층 등 복지 사각지대와 사회안전망 부재, 여기에 어려운 경제사정까지 겹치면서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 일가족 동반 자살 뉴스가 연일 한국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천 계양구 임대주택에서 40대 여성과 20대 자녀 2명 등 4명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1월엔 김포시 장기동 한 아파트에서 할머니, 엄마와 8세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삶이 힘들다”며 생활고를 토로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이른바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정책과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며 동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해 부모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도 문제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회원국 중 자살 사망률 1위 국가다. 14년간 부동의 1위로 ‘자살공화국’이란 오명과 함께 2018년 한 해 동안 1만3천여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7.5명이 자살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11대 경제대국인 한국의 암울한 현실이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생활고,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자주 일어날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그토록 살기 어렵고 희망이 없는 세상인가? 그렇지 않다. 느낌과 사실을 구분하는 안목을 가지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팩트풀니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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