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문제로 크게 들끓었다. ‘조국 사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부모와 부모가 일궈낸 재력,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의대에 입학하고 온갖 혜택을 누렸다. 조국은 재수 없이 걸려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만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돼 있고 그 계층이 세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습 중산층’의 등장이다. 과거에는 소위 상위 1%의 특권층이 존재해 부와 권력을 세습했지만 지금은 소득 분위 10∼50%에 속하는 중산층, 특히 상위 20%에 속하는 이들이 문제의 주역이다. 비교적 높은 소득 지위를 가진 그들은 실물 부동산과 자녀 교육에 올인한다.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과 집을 마련하는 데 자금을 보태고, 취업에 자신의 지위를 총동원한다. 교육을 통한 불평등, 주택 대물림을 통한 새로운 진입 장벽이 설치된다. 김성태 의원의 판결에서 보듯이 뇌물은 아니지만 딸이 청탁에 의한 부정 취업이 인정된 것을 보면 이러한 특혜는 비일비재하다.
조귀동의 저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 따르면 세습 중산층 1세대에 해당하는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생의 자녀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생들에게 세습이 진행 중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에 소위 ‘은수저’가 존재한다. 나는 금수저가 아니지만 능력으로 나의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에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는 “지금 청년세대가 불행한 건 그 부모인 386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양질의 일자리와 높은 임금,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정 세대가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사실 새로운 ‘세습 중산층’ 문제가 대두할 것으로 예측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7년 전 사회적 부(富)와 권력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수의 그룹에 집중되고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모의 계층→자녀의 학벌→자녀의 고소득 일자리 취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다. 이제 대한민국은 흙수저 청년이 금수저·은수저 청년을 이길 수 없는 사회가 돼버렸다. 패자부활전은 어림도 없다. 소득의 양극화를 없앤다고 사회주의 정책을 마구 남발하는 현 집권세력도 대부분 강남에 터를 두고 자녀들은 외고에 다니는 특권계층이다. 아무리 정의와 공정과 양보를 떠들어도 현실은 반대로 간다. ‘기회의 평등’이란 말은 허무한 구호로 전락했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능력 만능주의적 불평등’과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평등주의 독재’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나라의 명운을 가를 4·15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결국 ‘세습 중산층’ 문제도 정치인들의 몫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할 때 해결하는 수단은 법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관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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