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받으며 영화 같은 일이 현실로 됐다. 한국 영화 101년 역사의 최대 쾌거이자 세계 영화사에도 신기원을 열었다. 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경의를 표했다. 참석한 모든 미국 영화인들의 마음을 단숨에 잡아버린 소름 끼친 명장면이다. 봉 감독은 디테일에만 강한 게 아니라 ‘무엇이 중한지’를 아는 영리한 사람이다. 봉 감독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이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기영 감독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독창적인 스타일리스트이자 시대를 앞서나간 감독이다. 신분 상승을 꾀하려다 추락하는 내용의 영화 ‘하녀’는 2층집 계단을 통해 시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半)지하’로 상징되는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을 계단을 통해 기호학적으로 표현한 ‘기생충’의 원조다.
이처럼 우리 영화인들의 DNA는 세계 수준인데도 시대를 잘못 만나서, 열악한 환경 때문에 힘들었다. 이제 우리 영화인들은 스스로 쌓은 금자탑을 더 치열하게 넘어서는 일만 남았다. 이번 우리 영화의 오스카 수상을 보면서 정부의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봉 감독에게 축전을 보내면서 “우리 영화인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펴고 걱정 없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정부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축전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도 함께 하겠다”는 부분이다. 숟가락을 얹겠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정부는 그들 영화인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봉 감독의 출중한 능력을 알아본 재벌그룹 CJ가 수백억 원을 투자했고, 그 결과가 오스카 수상이다. 만약 문화관광부가 알량한 돈으로 투자했다가는 본전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도체와 바둑, K팝과 골프 등 정부가 관여하지 않았던 분야는 다 성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 현실이다.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면서 미래 국가 방향성만 제시하면 된다. 사회적 갈등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각 분야에서 민간이 두각을 나타내면 한 몫 끼어들려는 정부와 정치인이 문제다.
‘기생충’이 히트하자 “우리의 양극화를 잘 묘사했다”는 둥, “가진 자들의 위선을 잘 파헤쳤다”는 둥 갈등만 조장한 자들이 누구인가. 왜 그때 “재벌그룹의 자금 지원을 받는 영화는 폐기처분돼야 한다”는 말은 안 했는지 궁금하다. 영화는 영화이고 그 메시지는 관객 각자가 느끼면 된다. 정부는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 민간의 영역에 들어와 배놔라 감놔라하면서 어쭙잖은 전문가 행세하다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잘못을 하면 안 된다. 지금 정권이 잘하는 ‘현란한 말 기술’보다는 봉 감독처럼 치밀하고 영리한 전략을 구사해 나라를 제대로 이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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