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반지하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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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속 기택네 반지하집도 화제가 돼 외신들이 한국의 ‘반지하’를 조명하고 있다. 반지하 주택의 기원을 캐는가 하면, 반지하 거주자들을 인터뷰하며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국 BBC는 ‘서울의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르포 기사를 보도했다. BBC는 “영화 ‘기생충’은 허구의 작품이지만 ‘반지하(banjiha)’는 그렇지 않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여기에서 산다”고 했다.

“빛이 거의 없어 다육식물도 살기 힘들고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10대들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땅에 침을 뱉는다. 여름에는 참기 힘든 습기와 빨리 퍼지는 곰팡이와 싸운다.” “한국에서는 멋진 차나 집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반지하는 가난을 상징한다. 내가 사는 곳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반지하에 사는 30대 초반 청년이 BBC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BBC는 서울에서의 반지하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도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내외부 사진을 곁들여 반지하 주택을 보도했다. 아사히는 도심에서 주택 부족이 심화하면서 저소득층이 저렴한 지하층 방에 살기 시작했지만, 최근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태원 등의 관광지에선 반지하를 살린 카페나 잡화점이 독특한 구조로 인기를 끌고있다고 했다.

BBC에서도 소개했듯, 한국의 반지하는 남북 분단과 급성장이 만들었다. 정부는 1970년 안보상의 이유로 대피용 지하층을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지하층 거주가 불법이었지만 암암리 주거용으로 개조해 셋방을 놓기 시작했다. 서울이 급성장하면서 주택 부족이 심각해졌고, 1976년에 지하층 거주가 허용됐다. 1984년 다세대주택이 도입되면서 독립된 세대로서 지하층 주거가 합법화됐고, 90년대 관련규제가 완화되면서 반지하가 크게 늘었다. 2005년만 해도 서울의 반지하 거주는 11%를 차지했으나 주차 기준이 강화되고 침수 문제로 규제가 생기면서 줄기 시작해 현재는 약 2% 정도다.

반지하가 세계적 현상인 빈부격차를 논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반지하는 한국에만 있는 주거 공간이다. 봉준호 감독도 칸영화제에서 “반지하는 영어나 불어에는 없는 단어로 한국만의 독특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빈곤과 반지하는 따로 떼기 어렵다. 정치권은 봉준호 기념관, 봉준호 공원,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 봉준호 영화박물관 등 ‘봉준호 마케팅’에만 열 올리지 말고 빈부격차 완화, 반지하 탈출에 신경써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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