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발표된 김지하 시인의 ‘오적(五賊)’이 있다. 이 시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을 다섯 종류의 오적으로 간주하고 풍자, 비판한 작품이다. 군사 정권의 부패상을 독창적인 시 형식으로 발표했다. 발표 후 김지하와 관련 출판인들은 고문을 당하고 이 시가 실린 ‘사상계’라는 잡지는 폐간됐다.
50년이 다 된 이 시점에서 새삼 ‘오적’이 떠오르는 이유는 요즘도 달라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오적’은 주로 뇌물과 탐욕 등 부패가 중심이었다면, 오늘날 ‘오적’은 뇌물을 받거나 금품을 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이다.
재벌만 해도 창업자의 능력에 까마득히 모자라는 2세, 3세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고급공무원이나 장·차관이나 똑같이 취급하지만 당시만 해도 장·차관은 권력과 명예, 돈이 보장되는 자리였다.
군 장성도 마찬가지다. 요즘 갑질로 고생하는 군 장성은 옛날 선배를 생각하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라고 할 정도다.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다. 이권에 개입은 물론 수십 명을 취직시킬 수 있는 지존의 자리였다. 지금은 취업 청탁 전화만 해도 끝장이다. 욕먹고 돈 많이 받는 월급쟁이로 전락했다.
당시의 오적은 부패했을지는 몰라도 제법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은 대통령 후보 밑에서 일하다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장관 자리 꿰차는 사람들이 많다. 능력은 뒷전이고 맹목적 충성만이 출세의 비법이다.
한나라 때 진평(陳平)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한 고조 유방이 중용했으나 뇌물을 받았다는 모함을 받았다. 유방이 그를 제거하려 하자 진평을 추천했던 사람은 유방에게 “이 어려운 시기에 효자나 의로운 사람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진평의 능력이 나라에 이로운 것인지만 살피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유방은 진평을 중용해 황제가 됐다. 진평은 사실 뇌물을 받지 않았다. 물론 뇌물도 안 받고 능력도 있으면 최고다. 지금은 뇌물을 받기 어려운 시대이니 제일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우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난리 통이다.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정부의 무능을 탓하고 있다. 이 와중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사태의 책임이 우리 국민이라는 투로 말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영국 갔다 회담도 못한 데 이어 우리 국민을 입국 불허하는 국가에 대해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있다. 이들은 우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국민의 책임이 아니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 마스크 대란에도 방역과 치료에도, 외교와 출입국관리 점수도 낙제이다.
능력 있는 장관감이 왜 없겠는가. 자기 사람 쓰기 바쁘니 이 모양이다. 새삼 적재적소니 지인지감(知人知鑑 :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력)이란 말도 필요 없다. 정말 어쩌려고 이러나.
정부의 신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됐고 국민 각자가 알아서 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손자 마스크를 사려고 4시간이나 줄을 서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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