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뉴스 보기가 불안한 세상

‘국정 장악능력은 떨어져 남은 2년 반을 표류할 것이다. 무능 정부에 대한 시민저항이 한동안 한국 정치와 대의민주주의의 기반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대형교회가 몰락하기 시작할 것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줄어들어 교통체증을 가속할 것이며 공연, 찜질방, 영화관, 단체 여행 등의 사업이 퇴조할 것이다.’

위 내용은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가 코로나 19사태가 가져 올 우리 삶의 변화를 14개 항목에 걸쳐 SNS에 올라온 일부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시민들의 위생적인 생활이 향상되는가 하면 무인점포의 증가, 스마트 행정 수요 확대, 오프라인 유통구조가 온라인으로 옮겨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예언했지만, 비관적인 전망도 제시했다. 디지털 경제에서 낙오되는 취약계층은 경제적 기회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우려되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이번 사태를 조속히 안정시키고자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학도 연기했고 성당과 교회까지 종교행사를 간곡히 말렸다. 운동경기도 중지되거나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으며, 각종 모임과 사회단체의 행사도 취소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홍보가 계속 될수록 ‘사람’이 무서운 관계로 발전했으며 그 결과 중소 상인들,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이다.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결혼 예식장이 파리를 날리고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오죽하면 ‘상가 임대료 깎아 주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런 경제적 취약계층은 이병태 교수가 지적한 대로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문제를 과연 우리 정부가 뚫고 나갈 능력이 있을까? 경제적 양극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연일 계속되는 TV에서의 코로나 사태 뉴스는 어쩔 수 없이 사회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이런 사회적 불안에다 마스크 하나 사기 어려운 실정에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면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는 친구와 전화를 했더니 다 죽어 가는 소리를 한다.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돼지를 키웠는데 이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으니 돼지는 누가 키우느냐는 것이다.

이제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한국을 탈출하는 바람에 그 고통은 사회적 약자, 경제적 취약계층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됐다.

경로당 문을 닫고 무료급식소까지 급식을 중단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노인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노숙자들을 무척 힘들게 한다. 이들 경제적 약자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입는 정신적 트라우마는 여러 분야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런 불안이 쌓이고 쌓여만 간다면 개인적으로는 우울증 같은 불행을 초래할 것이고 이것이 집합을 이룬다면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꼭 10년 전 칠레에서는 광산이 무너져 33명의 광부가 갱도에 갇혔지만 69일 만에 구출된 기적 같은 사건이 있었다. 절망과 분노, 배고픔, 공포…그러나 작업반장 우르수아는 이들을 보듬고, 희망을 갖게 하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69일을 버티게 한 끝에 모두를 살려 냈다. 그리고 그는 굴속에서 구조될 때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다.

그렇다.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무섭고, 거리에 나서기가 불안한 사회적 약자들, 마스크 하나 해결 못하는 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국민, TV만 켜면 쏟아지는 뉴스에 가슴이 울렁이는 사람들…이럴 때 믿음직스럽고 용기와 삶의 힘이 솟구치게 하는 칠레의 광부, 우르수아 같은 지도자의 모습이 간절할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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