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도로명 주소에 동네이름 써야 하는 이유

정조 때 만든 저수지 만석거(1795년)와 축만제(1799년)가 공식적으로 옛 이름을 되찾았다. 수원시의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만석을 얻는 저수지요, 만년을 가는 왕실을 기원하며 정조 임금이 명명하였지만 백성에게 만석거와 축만제는 뜻도 어렵고 읽기도 어려웠다. 더욱이 일상적 삶에 와 닿지 않으니 사람들은 교구정(영화정)이 있는 방죽이라는 뜻에서 ‘교구정 방죽’으로 부르다가 ‘조기정 방죽’을 거쳐 ‘조개죽 방죽’까지 갔다. 1914년 일형면과 의왕면이 일왕면이 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일왕저수지’로 불렀다. 항미정과 짝하여 ‘서호’라는 불린 축만제는 수원 서쪽에 있거니와 부르기도 쉽고 문학적 표현으로 읽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제 이름을 찾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수원역 앞을 지나는 큰 도로명은 ‘덕영대로’이다. 의왕시 이동 부곡 IC입구 교차로에서 수원시 수원역을 지나 용인시 기흥구 경희대입구 삼거리를 잇는 긴 도로이다. 의왕시와 수원시 경계지역의 덕성산의 ‘덕’과 수원 영통동과 용인 영덕동의 ‘영’을 따서 덕영대로가 되었다.

그런데 ‘수원시 팔달구 덕영대로 692번지’로 쓴다면 어느 동네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곳은 화서역의 주소지만, 수원시 구간의 덕영대로의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만약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덕영대로 692번지’ 라고 쓴다면 화서동에 있다는 사실만은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도로명 주소에서 동네 이름은 뒤에 괄호 속에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이 아닌 선택 사항이라는 점이다. 동네이름 표기를 선택적으로 하게 만든 것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동네라는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도로명 주소의 편리성만 강조한 행정편의주의는 지역적 정체성을 무시한 처사가 되었다. 도로명 주소에 동네이름을 쓰면 주소가 길어지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뒤에 괄호 속에 동네 이름을 부기하는 것이 더욱 우스운 모양새다.

나는 도로명 주소를 쓸 때면 동네 이름을 반드시 적는다. 도로명 주소 ‘팔달구 화서문로 ○번길’에서 ‘팔달구 장안동 화서문로 ○번길’로 적는다. 장안동을 하나 넣고 안 넣고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집배원 아저씨에게 물어볼 일이다.

그래서 원천리천, 원천천이 아니라 ‘원천’이 맞고 매향1교는 ‘삼일교’로 제 이름을 찾아야 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이름은 제대로 불러줘야만 한다. 그래야, 오해가 없다. 동시에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담는 일이기도 하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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