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과 관계에서 번져가는 질병이다. 방역이 잘되고 충실한 시스템을 갖추었더라도 사회적 권고를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증상자가 타인을 만나게 될 경우, 우리는 감염의 위험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재력이 있다고 한들 이를 피해 해외로 자기 몸을 피신시켰더라도 감염병은 제트 여객기보다 빨리 이미 피신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초기에 동양인만의 질병인양 동양인을 혐오하던 서구 선진국들도 결국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번식력에 주저앉아 뒤늦은 감염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감염병은 인류가 만들어낸 물질문명의 편리와 함께 강한 전파력을 선보였고, 여기에 덧붙여 질병의 경쟁적 인터넷 보도로 감염병은 자체의 위력보다 더욱 강하게 포장되고 각색되었다. 그 결과 인간에게 가장 유해한 바이러스인 ‘공포와 불안’이라는 인위적 바이러스가 창출되었다. 여기에 총선이라는 이슈가 시간적으로 가깝게 위치하여 왜곡된 정치 전략과 논평들이 인위적 바이러스를 더욱 촉진시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보다는 여기저기 더 많은 위험이 즐비하고 기다린다는 ‘공포와 불안’의 바이러스들이 이성을 잃게 하였고 합리적 판단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시간을 주지 않고 조급함을 부추겨 가짜뉴스와 거짓정보들이 기생하기 편리한 여론 공간까지 만들어졌다. ‘코로나19’는 인위적 바이러스인 ‘공포와 불안’이라는 이차적 바이러스로 그 위세를 강화시키고 있다.
노력하는 정부도 봉사하는 의료진도 기다리는 국민도 모두가 ‘감염병의 위험사회’로 내몰릴 판이었다. 실제 확진이 판정되지 않았더라도 지독한 스트레스에 포위되어 마음이 병상에 누워 고통을 겪고 흥분했고, 그것이 분노가 되기도 했다.
이제 차츰 감염병은 억제될 것이다. 그러나 더 빠른 종식을 원한다면, 우리가 감염병의 위험을 극복하길 원한다면, 과도하게 포장된 그동안의 ‘공포와 불안’의 허상들을 벗겨 내 마음의 안정과 잃어버린 이성의 소환을 주문해야 할 것이다.
위험은 감지하고 방심 없이 준비는 하되, 이 준비마저 허무는 이차적 바이러스인 ‘공포와 불안’을 이제는 떨궈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치료제가 투약되고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제대로 힘을 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공포와 불안’이 우리를 ‘감염병의 위험사회’라는 수렁 속에서 다리를 잡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해내고 있다’는 긍정의 마음가짐이 바이러스를 막아낼 것이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위험사회는 긍정사회로 바뀌어 감염병을 통제할 것이다.
염종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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