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역병에 약초 되어

며칠 전 예방의학교수를 마주쳤기에 작금의 바이러스19 사태가 얼마나 갈 지 물었다. 그는 ‘내 코가 석자’라고 하였다. 자신은 가족들이 대구에 사는 주말부부인데 병원에서 공문을 받았기에 주말마다 보던 가족을 만나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상황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한 소설과 그에 관련하여 내가 발표하였던 논문이 생각났다(Hwang K, Hong HS, Heo WY. Would medical students enter an exclusion zone in an infected district with a high mortality rate? An analysis of book reports on 28(secondary publication). J Educ Eval Health Prof. 2014;11:15).

몇 년 전 필자가 근무하는 의학전문대학원 면접시험에서는 정유정 작가의 ‘28’이라는 소설의 간추림을 수험생들에게 제시하고, “당신이 의사가 된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폐쇄된 화양시에 환자를 돌보기 위하여 들어가겠는가?” 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28’은 전염병에 대한 소설로서 그 배경은 수도권 인근 도시, 화양(火陽)이다.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병한다. 최초의 환자는 발병 직전에 아픈 개에게 물린 이후 눈이 빨갛게 붓고 온몸의 장기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는 무서운 속도로 화양에 번져나가고, 국가는 화양을 봉쇄한다. 화양은 마침내 지옥이 된다.

면접에 참여한 교수들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러한 도시에 ‘들어가겠다’고 답하였다고 결과를 알려주었다. 합격한 학생들이 의과전문대학원 3학년이 돼서도 초심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폐쇄된, 치사율 높은 전염병 지역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가 반드시 포함 되도록 하였다.

결과를 보면 위험 지역에 기꺼이 가겠다는 학생은 36%로 가지 않겠다는 학생(64%)의 수보다 적었다.

주목할 점은 비록 위험 지역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답변한 학생들도 그 지역 밖에서라도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역할은 하겠다고 한 점이다.

치료제나 예방백신이 개발 되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퍼져 동료 의사들이 그 도시로 향하고 있다. 그들이 어찌하고 있을지 눈에 선하다.

환자의 구토를 손으로 받아내고 고름이 얼굴에 튀는 상황에서도 견뎌왔으며, 수술 중에 바늘에 찔려 장갑 안에 배인 피를 보면서도 내 아픔을 걱정하기보다 환자에게 오염시키지 않을까를 더 걱정하며 살아온 의사는,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는데도 환자를 들이밀며 간호사와 다투어 본 적이 있는 의사는, 인공호흡기 옆에서 모니터의 알람 소리에 날밤을 새며 환자의 침대에 이마를 대고 쪽잠을 잔 적이 있는 의사는, 지금 그 도시에 있는 동료가 얼마나 힘들지 머리보다 몸이 더 잘 기억할 것이다.

아침 출근할 때 불교방송에서는 8세기 당나라 때의 선승 이산혜연(怡山惠然) 선사(禪師)의 발원문(發願文)이 나오고 있었다.

“모진 역병 돌 때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 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리 (疾疫世而現爲藥草 求療沈 饑饉時而化作稻梁 濟諸貧)”

나도 환자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죄스러움, 동료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에 작으나마 정성을 모으는 데 동참하였다. 어서 빨리 코로나 19사태가 끝나길 기도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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