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지도자 생활 한국 조정의 ‘살아있는 전설’ 이계백 전 경기대 감독
35년 지도자 생활 한국 조정의 ‘살아있는 전설’ 이계백 전 경기대 감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상 첫 AG 금메달 지원ㆍ세계선수권 유치ㆍ남북 단일팀 가슴 벅차”
▲ 지도자로, 행정가로 지난 43년간 한국 조정 발전에 큰 획을 긋고 은퇴한 이계백 전 경기대 조정팀 감독.황선학기자

“만감이 교차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 경기도와 대한민국 조정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밀알이 될 생각입니다.”

지난 2월말 정년을 맞아 지휘봉을 내려놓은 경기도 조정의 ‘전설’ 이계백(60) 전 경기대 조정부 감독은 43년 조정 인생과 35년의 지도자 생활을 마감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오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운의 꿈’을 안고 수원 수성고로 유학한 그는 고교 2학년때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은 전환점을 맞았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체육교사에 이끌려 조정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경기대 2학년 때인 1980년, 2년 뒤 열릴 뉴델리아시안게에 대비해 16년 만에 부활한 국가대표팀에 뽑혀 주장을 맡았으나, 협회의 행정 착오로 군입대 영장이 발부돼 정작 아시안게임 무대에는 서보지도 못하고 6년의 짧은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감독은 “너무도 아쉬웠지만 훗날 못이룬 꿈을 지도자로 이뤄내겠다는 생각으로 잊고 입대했다”고 말했다.

군에서 제대한 이 전 감독은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를 맡아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2년 뒤에는 서울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대비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선수로서 못이룬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출전 꿈을 이뤘다.

1986년 모교인 경기대 조정팀을 맡아 첫 해 전국체전서 남자 에이트 우승을 일궈내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한 그는 1990년 남자 팀의 해체로 여자 팀만 육성했다. 남다른 지도력과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 10년동안 경기대가 쟁쟁한 실업팀들을 제치고 여자 조정의 최강으로 군림하는 데 앞장섰다.

더욱이 싱글스컬(1인승)은 ‘경기대의 전유물’이라 불릴 정도로 최강 전력을 구축했다. 한혜순, 김옥경, 신영은, 지유진, 김슬기 등이 10여년간 여자 싱글스컬의 1인자 계보를 이었다.

이 전 감독은 체육 행정가로서도 한국 조정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93년부터 20여년간 경기도조정협회 전무이사와 부회장을 맡아 전국체전 종목 7연패 달성 등 전국 최강의 전력으로 이끌었고, 2005년부터 대한조정협회 훈련이사와 전무이사(2011년), 수석부회장(2017년)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세심하고도 불도저 같은 업무 추진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 프로젝트를 위해 통역도 없이 홀로 중국 항저우로 날아가 유명 지도자인 류쿤 코치를 영입, 남자 싱글스컬에서 신은철(당시 한국체대)이 한국 조정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도록 기여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와 함께 2011년 화천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013년 충주 세계선수권대회를 사상 처음으로 유치했고, 충주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과 용인조정경기장의 건립을 이끌어냈다.

더불어 2018년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사상 첫 남북 단일팀 구성과 충주 합동훈련(1개월)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이에 대해 이 전 감독은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첫 금메달 획득과 국내 첫 세계조정선수권 유치, 2년전 남북 단일팀 성사는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가슴벅찬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조정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아시아선수권을 국내서 지도자와 행정 책임자로 치러낸 이 전 감독은 “앞으로 후배들이 나서 한국 조정의 발전과 더 큰 도약을 이뤄내줬으면 좋겠다”며 “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도우며 영원한 조정인으로 살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황선학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