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대한 모든 연구는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언어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과 독일, 미국에서 살며 언어의 권력 체계가 어떻게 인간의 신체와 생각을 지배하는지 그 누구보다 많이 경험했기 때문일 테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러한 언어를 들여다보는 기획전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을 지난 8일부터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지난 2월 27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휴관하면서 온라인으로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말과 글, 실체이자 관념, 체제이자 문화인 언어를 들여다본다. 지배 언어가 낳는 계급과 소외, 생존 도구로서 인권과 직결된 언어의 힘을 시각예술로 제시한다. 전시는 일상에 서서히 스며든 언어 양극화와 연동한 문제들을 환기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의 힘과 다양성을 새로이 바라보게 한다.
기획전에는 한국,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레바논 베이루트 등에서 활동하는 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영상 8점, 설치 3점, 총 11점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 김우진은 <완벽한 합창> 채널비디오 작업으로 제주어와 함께 해녀라는 삶의 형태 또한 사라지는 현실을 드러낸다. 한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제시 천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라는 영어의 권위와 파급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의 영어 학습 교구, 동영상, 학습지를 재료로 영상, 사운드, 설치 작업으로 언어의 물리적 형태와 심리적 태도를 재구성한다.
로렌스 아부 함단의 <논란의 발화>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빚어내는 결정적인 오해나 오역의 순간들을 실제 입 크기와 유사한 디오라마로 제작해 발화의 순간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직접적인 사례와 증거로 드러낸다. 5만 개의 레고 브릭을 사용해 <오즈의 마법사> 영화 스크립트를 점자 언어로 나타낸 문재원은 시각뿐 아니라 촉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신작을 구상했다. 이주호 & 이주승 형제는 두 눈의 시력이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작 <두 개의 시선>을 통해 장애를 대하는 편견과 숭고한 시선 사이에서 질문을 던진다. 언어의 끝에서 만난 음악을 매개로 한 형제의 짧은 다큐멘터리는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처음 선보인다.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안젤리카 메시티는 3채널 영상 <말의 색깔>을 통해 그간 꾸준히 탐색해온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상현실을 주제로 탐구해온 로렌스 렉은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는 AI의 생성과 소멸을 다룬 영상 <지오맨서>를 통해 젊은 인공지능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오히려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의 언어와 윤리,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미래에 대한 상상이 우리의 현실 인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다. 전시는 학예사의 설명이 곁들여져 편안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우리가 낯선 존재와 다름 앞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우리의 불안이 과연 다른 종, 다른 대상, 다른 언어로부터 비롯하는지, 미래에 하나의 목소리만 남는다면 그 불안은 과연 사라질 것인지 질문한다”며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의 전시투어 영상을 통해 다양한 응답과 이야기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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