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이성 잃은 퍼주기, 방향 잃는 철도·도로
[김종구 칼럼] 이성 잃은 퍼주기, 방향 잃는 철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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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정부, 끝없는 퍼주기
재원마련 도내 SOC 마구 삭감
어느 시장·공무원 ‘큰일이다’

긴 줄을 서야 했을 것이다. 쿠폰을 받아 들었을 것이다.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 돈으로 뭘 할까. 고기라도 한칼 썰어 갈까. 아들 녀석 휴대전화 바꿔 줄까. 어떤 이는 이런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난 괜찮으니 기부할까. 그러다 이내 포기했을 것이다. ‘그냥 쓰자.’ 그렇다. 이게 본능이다. 자연스럽다. 정치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퍼주기로 올가미를 씌웠다. 조만간 더 큰 퍼주기도 있다. 정부가 주는 재난 지원금이다.

‘국가 부채 위기다’, ‘재정 건전성 위험하다’…. 다 부질없는 소리다. 먹혀들 리 없다. 그런데도 이 소리가 나왔다. 코로나 추경을 세울 때다. 홍남기 부총리였다. 11조7천억원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18조원을 요구했다. 더는 안된다고 버텼다. 양심을 건 공무원의 항변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소신이었다. 그런데 정치는 항명으로 봤다. 여당 대표가 분노했다. “관두라고 할 수도 있다.” 홍 부총리가 밝혔다. “자리에 연연 않겠다.”

재난 지원금 때도 그랬다. 소득 하위 70%만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9조7천억원 든다. 여당이 100% 다 주자고 했다. 표(票)와의 약속이라고 했다. 이리되면 14조3천억원 든다. 물론 두 번 다 홍 부총리는 졌다. 애초 이길 게임도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입을 닫았다. 묵묵히 돈만 마련한다. 지자체 부담, 국채 발행, 세출 조정으로 얼추 맞췄다. 나라는 그의 걱정대로 간다. 국가채무율이 40%를 넘었다. 재정 적자는 4%를 넘었다.

사상 최악의 국가 부채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재정 적자다. 모두 미래 세대로 넘긴 빚더미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말이 없다. 그도 그럴게, 동사무소 늘어선 행렬이 있다. 누구 하나 근심하지 않는다. 다 밝고 다 들떠 있다. 퍼주기에 길들여진 여론이다. 어느새 짧았던 ‘홍의 전쟁’도 잊혀졌다. 몽니 부린 기재부 공무원의 객기처럼 됐다. 걸림돌 사라진 정치만 살판났다. 더 퍼주지 못해 안달이다. 가히 퍼주기 경쟁의 시대다.

정말 미래세대의 일일까. 지금은 받아 챙기면 되나. 세출구조조정 내용을 보자. 쉽게 풀면 사업비 돌려막기다. 사업비 빼내 퍼주기에 쓴다는 얘기다. 이때 기준이 ‘불요불급한’ 사업이다. 이것부터 난센스다. 이 나라에 불요불급한 사업이 있나. 어떤 철도, 어떤 도로도 그 지역엔 숙원이다. 십수년만에 어렵사리 확정된 일들이다. 하나같이 ‘경축, 00사업 확정’이라며 잔치 벌였던 사업이다. 그 사업들에 손대겠다는 것이다.

이미 주변에서 시작됐다.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비에서 2천300억원 뺐다. 안산ㆍ시흥ㆍ광명ㆍ안양시민 난리 칠 일이다. 서울~세종 고속도로 예산에서 1천억원 뺐다. 구리ㆍ성남ㆍ광주ㆍ용인ㆍ안성시민 맥빠질 일이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구간 사업비도 100억원 뺐다. 대곡~소사선 철도 열차구매비도 103억 뺐다. 이러고도 ‘큰 지장 없다’면 그게 거짓말이다. 연기되고, 축소될 게 뻔하다. 이게 다 지원금 퍼주려는 짓이다.

3월 어느 날이었나. ‘그 시장’이 말했다. “코로나가 엉뚱하게 퍼주기로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시군 재정이 위협받을 거라고 걱정했다. ‘그 시장’, 지금은 말없이 돈 나눠주고 있다. 엊그제, ‘저 공무원’이 말했다. “한번은 어찌어찌 된다 쳐요. 계속 감당할 수 있나요. 그건 불가능한 겁니다.” 더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도 지금은 열심히 지원금 홍보하고 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이다. 퍼주기 광풍에 질식해 할 말도 못한다.

그때, 홍남기 부총리는 이렇게 맺었었다. “눈 덮인 들판을 지나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그 홍남기와 이름 못 밝히는 ‘그 시장’과 ‘저 공무원’, 저들의 고민이 전해주는 탄식이 있다. -퍼주기는 더 이상 미래 부담이 아니다. 오늘 현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남긴 재앙도 이것이다. 퍼주기 합리화, 퍼주기 몰염치, 그리고 퍼주기 무한 경쟁.-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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