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조건 없이 주고 받는 사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전 세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미 경제적 고통은 피부로 느낄 정도다.

정부가 급하게 재정을 풀어 국민에게 현금으로 재난지원이라는 정책을 내 놓을 만큼 사태는 심각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정책이 각 시별로 도별로 나랏빚 내어 인심 쓴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상황임을 볼 때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다시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정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걱정하게 된다. 바로, 자발적 기부라는 상위 30% 계층에 지명된 문구 때문이다. 상위 30%만 기부하라는 말도 아니고 다른 계층이 기부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상위 30%라는 지명을 받은 국민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말들이다.

성경은 정확하게 사람은 죄인이라고 정의한다. 그 죄에 대한 정의(定意)는 욕심이며 왜곡된 자기 사랑이다. 성경 안에는 99마리의 양을 가진 부자가 1마리의 양을 가난한 자에게 빼앗아 100마리를 채우고 싶어 하는 욕심을 지적한다. 우리가 정의(定意)하는 상위 30%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자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뜻 현금성 자산을 기부라는 이름으로 포기할 수 있을까? 만약, 상위 30%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지 않는다면 어떤 여론몰이가 그들을 부도덕한 욕심쟁이의 부르주아 집단으로 사회적 재판대에 올려놓지는 않을까.

예수님은 언제나 가난한 자들을 먼저 돌보셨고 부자들에겐 물질에 노예가 되지 말고 그 물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늘 가르치셨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가난한 자들을 향한 구제방법은 독특했다. 구제하라는 성경의 명령에 유대인들은 시장으로 나아가서 가장 번잡한 시장터에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나에겐 이렇게 구제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가난한 자들같이 살지 않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구제하오니 받아 주옵소서”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면 가지고 온 동전을 하늘로 던지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소리쳤다. 그 발밑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그 던져진 동전을 줍기 위해 그 유대인의 발밑을 기어다니며 동전을 주어야 했다.

기부라는 것은 무엇인가? 기부의 행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겠는가? 정치적 성향으로 친여권의 사람들은 정책을 찬성하며 기쁨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만만치 않게 기부의 정신이 빠져버린 낙인찍힌 30%의 상위부자들은 불편한 마음으로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불편함이 기부하든 하지 않든 기부의 정신에서는 이미 멀어졌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불편하게 70%대 30%로 갈라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게 된다. 속히 우리 사회에도 자발적 기쁨으로 기부를 통한 보람을 느끼는 기부문화(Donation Culture)가 제도가 성숙해져야 한다.

예수님은 바른 믿음은 나누는 것이며 함께 하는 것이며 조건 없이 주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구제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그것은 그 구제를 통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마음으로라도 우위에 서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더욱 성숙해져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부로 조건 없이 주고 받는 아름다운 나눔의 사회가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조상훈  만방샘 목장교회 목사·수지지부 FIM 이슬람 선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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