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31번, 66번, 그리고 학원 강사 B씨의 경우

뉴욕 맨해튼에 있는 타임스퀘어는 미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이다. 매년 12월31일 밤, 빼곡히 모여 있는 사람들이 5ㆍ4ㆍ3ㆍ2ㆍ1… 카운트다운을 하다가 0에 이르면 환호성을 지르고 축포가 터진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다. 참 멋진 ‘광장의 문화’이다.

유럽 도시의 광장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 파리의 콩코드광장, 런던의 트라팔가르광장, 체코 프라하의 바츨라 광장,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등 도시마다 전통과 특색이 있는 광장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도시 중심에 광장이 있는 것은 도시를 건설할 때 광장부터 조성하고 그 나라의 상징이나 인물을 조형물로 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광장들은 그 도시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중심을 이루게 되며 큰 규모의 종교 행사도 이곳에서 열리게 된다.

심지어 파리의 콩코드광장에서는 프랑스혁명 때인 1793년 루이 16세를 공개 처형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럽에서의 광장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은 그리스의 아고라 등 시민들의 공공장소 역할을 해 온 데서 비롯됐다고들 말하고 있다.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한 도시공학 전문 교수가 유럽 도시에는 광장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시민계급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수긍이 갔다.

우리는 왕권과 백성만 있고 시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시민이 없고 백성만 있으니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고 토론문화가 형성되는 광장이 필요 없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광장이 있어 시민 계급이 형성된 것 같고, 또 달리 보면 시민 계급이 있어 광장이 생긴 것 아닌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 같다.

어쨌든 광장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시민의식을 높였으며 도시의 공적 기능에 대한 참여도를 확대시켰다.

그런데 우리는 광장이 없었다. 지금의 서울 광화문 광장도 조선시대에 육조 거리, 관아가 있는 큰길에 지나지 않았으며 오늘의 모습으로 탄생된 것은 2008년에 착공, 2009년 8월에 완공을 했다.

그러나 지방도시는 역사성 있는 공원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고 도청 앞 광장, 역 앞 광장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광장 없이 살아온 생활문화 때문인지 우리 도시인들에게 ‘함께 사는 도시인’으로서의 연대감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를 자주 본다.

코로나19 수퍼 전파자로 지목된 신천지 신도 31번 확진자 의료인들의 헌신적 희생과 국민의 협조로 겨우 사태를 진정시키는가 했는데 이태원 클럽에 가서 불을 지른 용인 66번 확진자, 그리고 인천 미추홀구의 학원 강사 B씨, 이런 위기를 뒤로하고 골프를 치려다 문제가 되자 이를 취소한 국회의원 등등. 이들은 광장이 있는 최소한 삶의 연대감도 없는 야생의 인물들이다.

학원 강사 B씨의 경우 거짓말까지 하여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숨겨 그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 것. 그래서 그에게서 수업을 들은 A군은 물론, 그의 어머니와 다른 학원생 등 14여 명을 감염시켰다.

‘함께 사는 광장’의 삶에서 가장 나쁜 것은 거짓말이다. 그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광장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골목 문화’에서 ‘광장 문화’로 삶의 연대감을 높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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