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왕에게 드리는 보고서

<왕에게 드리는 보고서(Compte Rendu au Roi)>- 1781년 프랑스 절대왕정의 재무총감 자크 네케르가 발간한 회계보고서로써 프랑스 재정의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시절 절대왕정의 수입과 지출의 여러 세부내역들을 공개한 것으로서 이는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지피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 보고서에서는 왕정의 총지출액 2억5천만 리브르 중 무주택 빈민층에는 고작 90만 리브르를 쓴 내역이 나온다. 이 회계장부는 파리의 시민들을 분노케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위의 사건은 최근 매스컴에 계속 보도되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에 대한 논란의 데자뷰처럼 느껴진다. 핵심은 ‘후원금이 어디 쓰였는지 모른다’는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가 논란의 불을 지피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아쉬운 점은 이 할머니 회견 이후 여야 정치권의 친일·반일 논란으로 번지며 정쟁화되고 있음이다. 이 할머니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서 위안부 인권운동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닌 정의연이라는 단체 안의 ‘적폐’를 없애고 “위안부 인권운동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도모하자는데 목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 ‘적폐’의 사전적 정의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가 말하는 정의연이 오랫동안 쌓고 쌓은 폐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국세청 양식과 다른 ‘회계 관행’으로 이어지는 후원금 ‘안일한 관리’가 답이 아닐까 한다.

정의연은 수요집회 등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회운동을 하는 공익법인이다. 정의연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하여 지난 30년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감과 참여, 행동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달성하였다. 특히 매주 수요일마다 개최되고 있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수위’는 1천440회를 넘어서는 등 위안부 인권운동에 국내외 어느 단체보다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온 공익법인으로서 그 역할과 성과를 폄하할 수 없다.

압축과 생략은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세상을 어느 하나의 원인으로 다 이해하려는 것은 압축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일이고 생각의 안이함이라고 한다. 지난 30여 년간 위안부 인권을 위해 활동한 정의연의 성과를 압축이라는 시간적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조직 내의 적폐를 고민하지 않고 시민단체와 공익법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책무성’을 생략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도 여러 기부자와 후원자의 도움으로 여러 인도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기부자와 후원자의 기부금 사용의 합목적성과 즉시성을 기반으로 집행의 투명성과 공개성의 원칙을 준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지난 2017년 기관의 투명성 및 신뢰도 강화를 위해 국내 비영리기관에서는 최초로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했고, ‘4중감사시스템(국정감사, 감사원감사, 외부회계법인감사, 내부감사)’에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국민청구 기반 ‘상시 정보공개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설화(說話)’라는 말이 있다. 말은 입속에 감춘 칼과도 같아서 아무리 실언이라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순식간에 ‘설화’가 된다.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에 따른 정쟁의 가열에서 나와 이번 논란을 공익법인과 시민운동이 한 단계 성장하면서 공익목적 사업의 본질과 책무성의 중요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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