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처칠,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선거에는 패배했다
[변평섭 칼럼] 처칠,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선거에는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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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있는 영국 의사당 입구에는 영국이 배출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영국인이 아닌 유일한 동상은 2015년에 세워진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 그런데 이들 동상 옆을 지나면서 유난히 구두가 반짝이는 동상 하나를 발견한다. 윈스턴 처칠의 동상이다. 그만큼 처칠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갈 때 처칠의 신발을 쓰다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그는 세계 2차대전 시 영국 총리로서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그가 전쟁 중에 국민을 향해 ‘피와 눈물과 땀밖에는 내가 바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 연설은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애용하는 명연설이다.

독일 폭격기들이 런던을 폭격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몸을 피하지 않고 우뚝 서서 전쟁을 지휘했고 마침내 1945년 승리를 쟁취했다. 5월8일, 독일이 항복한 날, 온 국민이 열광했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2개월 후, 그러니까 1945년 7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시행됐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당연히 선거에서도 압승하여 다시 총리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뜻밖이었다. 처칠은 패배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왜 국민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국민이 정신적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전쟁 중에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제 좀 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구가 치민 것이다. 이것이 솔직한 인간심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상대 당은 ‘우리 모두 미래와 마주하자’는 달콤한 슬로건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했다. 이제 그 무섭던 전쟁의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의 복지국가를 향해 나가자는 데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것이 민심이고 정치다. 그런데 처칠은 전쟁 후의 계획에 소홀했다.

요즘 세계가 한창 코로나와 싸우면서도 ‘코로나 이후’의 문제를 서둘러 다루기 시작했다. 소위 ‘포스트 코로나’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회 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교육의 온라인화와 ‘비대면’ 의료시범사업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이제는 기업체에서 재택근무의 장점을 살려 ‘비대면’ 근무체제로의 전환 등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의 물결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이 나온 것도 이런 코로나 이후에 대한 준비로 보인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코로나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선택의 짐을 지울지 모른다. 이미 미국은 중국 내 자국 기업의 철수와 중국에서의 자원공급을 동결하고 동맹국들의 동참을 요구할 태세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고 자원을 중국 등 외국에 의존하는 입장이니 큰 문제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외적 환경의 변화다. 이것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선방했다고 찬사를 받고 있지만 이와 같은 코로나 이후의 급변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면 전쟁에서 이기고도 선거에 패배한 처칠처럼 될 것이다. 더욱이 국민은 코로나와 싸우면서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다. 그래서 처칠의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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