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스트 코로나와 가을 학기제
[기고] 포스트 코로나와 가을 학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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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확진자의 증감에 따라 초ㆍ중ㆍ고교의 등교 연기, 등교, 등교 중지가 반복되면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2020학년도 학사일정을 9월부터 시작하는 ‘가을 학기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가을 학기제를 시행한다. 봄 학기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뿐이다.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 남반구 나라에서는 2월 또는 3월에 학기가 시작되지만,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므로 가을 학기제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본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가을 학기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일본이 이번에 가을 학기제를 도입하면,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봄 학기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되는 셈이다.

학기제에는 우리의 굴절된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구한말에는 ‘7월 시작 2학기제’였으나, 일제강점기에는 ‘4월 시작 3학기제’, 미군정기에는 ‘9월 시작 2학기제’가 도입되었다. 정부수립 후 1949년 제정된 ‘교육법’은 일제강점기 때의 ‘4월 시작 2학기제’를 다시 받아들였다. 이후 5·16 군사정권이 신학기를 3월로 변경하면서 1962년부터 ‘3월 시작 2학기제’를 시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봄 학기제 도입은 무더위와 강추위를 피하여 학기를 운영할 수 있고, 석유파동 때에는 ‘짧은 여름방학, 긴 겨울방학’으로 난방비가 절약된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생활하고 있다.

봄 학기제는 교육과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이미 여기에 맞춰져 있어 학생들이 생체리듬을 유지할 수 있고,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인 정부회계연도와 3월 1일부터 2월말까지인 학년도가 비슷해 행정적 편의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한국 학생이 외국 학교로 가거나 외국 학생이 한국 학교에 오려면 학기를 맞추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고생한다는 점이다. 또한 가을 학기제는 국제통용성으로 인적 자원의 국내외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고, 학사운영의 효율성과 긴 여름방학을 통해 학생들이 폭넓은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교육과정과 학사일정, 대학입시, 기업채용, 공무원시험 등을 전면 수정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2015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보고서에서는 학제개편 비용으로 8조~10조원을 추정했다. 과거에도 세 차례 가을 학기제를 검토했지만, 시행 첫해 초등신입생이 두 배 정도 늘고, 이에 따른 시설과 교사 확충, 입시 조정 등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사회적 파장으로 검토에 그치고 말았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가 학기제 변경의 난제를 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가을 학기제로 모든 학생이 한 학기를 똑같이 쉬게 되면 3월과 9월 각각 신학기를 시작한 학생들이 섞이지 않고, 초등입학생도 증가하지 않는다. 또 수업시간 감축으로 인한 학생 평가와 생활기록부 작성의 어려움, 현 고3만 수능 일정이 바뀌는 등의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된다. 다만, 사회적 시계가 한꺼번에 조정되므로 모든 학생이 6개월 늦게 진학하거나 취업하는 등 혼란과 반발이 따를 수는 있다. 효과와 비용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가 학기제 변경의 좋은 기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인류문명과 사회체제에서 드러난 취약점은 역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혁과제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학사 일정이 파행된 이번 기회에 가을 학기제를 도입해 세계 여러 나라들과 맞추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학기제를 인위적으로 바꾸자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혼란과 경제적 부담이 따를 것이다. 코로나방역이 현재라면 가을 학기제는 미래다. 현재에 충실하되 긴 안목으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전 여주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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