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청출어람이 아니라 청청어람
[경제프리즘] 청출어람이 아니라 청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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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사상가 순자(荀子)의 권학(勸學) 첫머리에 보면 “학문은 그치지 않아야 한다. 청색은 남색에서 취하나 남색보다 더 푸르다”란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잘 아는 ‘청출어람’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원문을 보면 ‘靑, 取之於藍, 而靑於藍’으로 되어 있다. 현재 통용되는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색은 남색에서 나옴)보다는 ‘청청어람’(靑靑於藍 : 청색이 남색보다 푸름)이 더 어울린다.

순자는 흔히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성악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고,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는 멋진 말도 했다. 순자는 인간이란 본질적·이성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되면서 인간의 악한 성질이 튀어나온다고 봤다. 순자가 성악설을 제기한 목적은 인위적인 교육과 감화를 통해 인간의 악한 성질을 바꾸어 선한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윤미향 의원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면서 “위안부 대의는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는 역사”라고 했다. 윤미향 사건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윤미향에게 30년 동안 이용만 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하면서 불거졌다. 핵심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모금한 돈이 제대로 쓰여졌는지에 있다.

기부금이 회계 장부에 누락됐는지, 개인 계좌로 모금한 것이 실정법 위반인지, 본래의 목적 대신 엉뚱한 곳에 쓰였는지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면 된다.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 쉼터 소장의 사망과 관련해 “검찰과 언론이 괴롭혀서 돌아가신 것”이라면서 부적절한 기금 운용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호도하고 있다. 윤 의원의 발언에 대해 국민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앞서 순자의 ‘청청어람’에서 보듯이 갈수록 좋아지고 발전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악(惡)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뻔뻔해진다.

윤 의원 사태로 여론이 악화되자 집권 여당은 잘못된 현대사를 바로잡겠다면서 5·18 민주화운동 왜곡처벌법과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내고, 제주 4·3 특별법, 여순사건특별법 등 근현대사 관련 입법에도 나선다고 한다.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과 KAL기 폭파 사건의 재조사, 국립현충원 내 친일인사 파묘 등의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역사가 왜곡됐다면 진상을 규명해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이 앞장서면 중립적·객관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나? 진영 논리 위주의 과거사 뒤집기는 불필요한 오해와 편 가르기, 이념 갈등만을 초래한다. 얼마 전 김원봉 사태를 보지 않았던가? 처칠은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가 죽는다”고 했다. 역사의 꼬임을 풀어 진정으로 화해하고 치유하는 게 지도자의 몫이다. 순자는 이런 말도 했다. “남을 해치는 것이 귀신같고, 남을 속이는 게 교묘하고, 못된 짓을 하고서도 뻔뻔한 것이 정치의 가장 큰 재앙이다.”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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