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죽이는 유통산업발전법... 수십년 지원 사각지대
소상공인 죽이는 유통산업발전법... 수십년 지원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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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지원 사각지대... 벼랑끝 ‘유통상가단지’전국 81개 중 도내에 26개 ‘집중’
규모 크지만 속은 영세업자 집적지
각종 지원 소외, 관련법 개선 절실

이영윤 시화유통상가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유통상가단지 상인들도 똑같은 소상공인인데 왜 우리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겁니까!”

1천300만 경기도민이 현장에서 겪는 부조리에 대한 대안을 찾아 나서는 경기일보 독자소통팀이 주목한 첫 번째 화두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이면’이다.

유통산업발전법 탓에 유통상가단지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낙후,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이영윤 시화유통상가사업협동조합 이사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소상공인 생계위협법’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독자소통팀이 ‘유통산업발전법’과 유통상가단지에 대해 들여다봤다.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지역본부가 한국유통학회에 의뢰해 실시한 ‘유통상가 활성화 지원방안 수립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유통상가단지(산업용재)는 전국에 81개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59%에 달하는 48개(경기도 26개)가 수도권에 있다. 산업단지 등을 배후상권으로 성장한 이들은 소상공인 집적지로, 산단 내 기업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등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재 이들 단지는 모두 정부나 지자체의 ‘소상공인 지원책’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상 유통상가단지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과 같은 대규모점포(전문점)로 분류, 전통시장이 받는 각종 지원을 일체 받을 수 없어서다. 개별 입주 점포는 소규모 점포이지만 전체 점포가 3천㎡가 넘는다는 이유에서 이들은 대규모 점포로 지정돼 있다.

이에 유통상가단지는 정부가 5천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전통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이나 시장 특성화 및 상권육성 사업, 온누리상품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소상공인 등을 위해 지급된 재난기본소득이나 재난지원금 역시 유통상가단지들에는 ‘그림의 떡’이다. 유통상가단지가 대규모 점포로 분류된 탓에 지원을 받지 못하자 일부 상가단지는 전통시장으로 등록해 지원받는 ‘우회로’를 택했지만 이마저도 요원한 실정이다.

현행 전통시장법을 보면 상인회 등 ‘상인조직’이 있어야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지자체들이 상인회만 상인조직으로 인정,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유통상가단지는 전통시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지자체는 협동조합도 상인조직으로 인정, 유통상가단지를 전통시장으로 인정해 주는 곳도 있어 현장에서는 오락가락 행정이라는 비난까지 일고 있다. 실제 서울 영등포유통상가, 인천 송림공구상가, 수원 구천동공구상가 등은 현재 전통시장으로 지정됐지만, 비슷한 성격의 시흥 시화유통상가와 안산 공산품유통상가 등은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통상가발전법상 대규모 점포 기준을 손보거나, 전통시장법상 유통상가단지에 대한 지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현재 유통상가단지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점포와 전문상가단지의 정의규정을 개정하거나 중소기업자 운영 점포의 경우 대규모 점포에서 제외하는 등 지원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어렵다면 전통시장법상 전통시장의 조건에 유통상가단지를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실률 40% 육박… 지역화폐·현대화 모두 혜택 無

“지역화폐도 못쓰게 하지, 전통시장처럼 시설 보수 지원도 못 받지…우리는 코로나19 이전부터 힘들었어요”

21일 찾은 시흥 시화유통상가는 화창한 날씨와는 달리 싸늘한 분위기만 풍기고 있었다. 연면적 18만6천533㎡, 대지면적 10만7천810㎡에 이르는 규모가 무색하게 주차된 트럭 몇 대를 제외하면 드나드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일부 업체는 손님이 오지 않는 상황을 체념이라도 한 듯 굳게 문을 잠가놓기도 했다. 이곳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면서 현재 상가 공실률이 40%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시각 안산공산품유통상가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너머로 보이는 현대식 건물과 대조되는 빛바랜 간판과 현수막만이 몇 안 되는 방문객을 반기고 있었다. 이날 만난 상인들은 단지의 낡은 간판과 진입도로, 화장실이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조차 내쫓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종일 형제배관(안산공산품유통상가) 대표(64)는 “우리 유통상가단지는 현행법(유통산업발전법)으로 지원받을 명분이 없어 낡은 시설을 개보수하려면 사비를 털어야 한다”며 “전통시장처럼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사는 유통상가 입주 소상공인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자발적으로 정비사업을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 소상공인 집적지 ‘유통상가단지’, 법적으론 대형마트?
경기도 내 유통상가단지들이 ‘지원 사각지대’에 방치된 가운데 유통산업발전법 등 관련법이 이 같은 문제를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이 나오는 만큼 근본 원인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유통학회가 전국 54개 유통상가단지(경기도 14개)를 대상으로 벌인 현황 조사를 보면 유통상가단지의 평균 연면적은 8만6천112㎡, 평균 입점 업체 수는 790개다. 개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점포가 모여 형성된 만큼 전체 규모는 크더라도 사실상 전통시장과 같은 ‘소상공인 집적지’에 해당한다.

현재 이들은 전통시장 등 타 영세 소상공인과 유사하게 건물 노후화와 영업 침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유통상가단지 경과연수를 보면 ‘20~30년’이 40.7%로 가장 많았고 ‘10~20년’(31.5%)과 ‘30~40년’(14.8%) 순이었다. 10년 미만 된 곳은 전체 조사 대상의 13.1%에 그쳤다.

문제는 유통상가단지가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다른 소상공인들과 달리 대형마트로 취급받으면서 지원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이 정의하는 대규모 점포의 기준이 오직 ‘3천㎡ 이상’이라는 면적 크기로 정해지고 있어서다. 과거 유통산업발전법의 대규모 점포 범위 변화과정을 보면 전통시장도 대규모 점포에 포함됐었지만, 지난 2006년 제외되면서 현재로선 유통상가단지만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 현 제도하에서 유통상가들은 전통시장으로 인정받아 불이익에서 제외되는 방안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 전통시장 인정도 요원…개별 지자체 관심에 엇갈린 희비
현재 전통시장법은 상업기반시설 현대화사업의 추진주체를 시장의 상인조직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으로 인정되는 시장 상인조직은 상인연합회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상점가진흥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따른 사업협동조합 등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최근 발표한 ‘전통시장ㆍ상점가 및 점포경영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전국 1천437곳의 전통시장 중 상인회를 조직한 곳은 1천63곳이었다. 55곳은 상점가진흥조합 및 협동조합을, 61곳은 사단법인을, 178곳은 친목회 등 임의단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조직이 없는 곳도 80곳에 달했다. 반드시 지자체가 인정하는 상인회를 갖추지 않아도 전통시장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지자체에서 유통상가의 설립주체인 협동조합에서 시장 인정을 신청하거나 현대화사업을 신청하는 경우 ‘상인회’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거나, 협동조합에 대한 인정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 유통상가단지 중 전통시장으로 등록된 비율은 12%에 그쳤으며, 대다수는 전통시장으로 등록돼 있지 않다. 또 전통시장으로 등록하려고 했지만, 상인조직을 별도로 구성하라는 등 지자체의 요구 조건을 맞추지 못해 실패한 곳도 24%에 달했다.

■ 유통산업발전법ㆍ전통시장법 개정으로 소상공인 보호 탈출구 찾아야
전문가들은 이처럼 어림잡아 정한 대규모 점포 기준을 완화하는 등 낡은 유통산업발전법을 손댈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통시장법 개정으로 소외된 유통상가들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우선 유통산업발전법상 대규모점포 정의에서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개별점포 집단을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며 “예외조항에 전문상가단지(유통상가단지)에 해당하는 곳을 추가해 전통시장과 같은 범주로 묶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전통시장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유통상가도 법률에 근거해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통시장법에 유통상가단지 정의조항을 신설하고, 전통시장 지원대상에도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필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유통산업발전법은 법안 특성상 수정에 오랜 시간이 걸릴 우려가 있다”라며 “전통시장법은 부령이기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부를 통해 예외 조항을 만들 수 있어 소상공인을 향한 예외 규정 마련과 유통상가의 전통시장 지정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시흥 시화유통상가>

[제보자 인터뷰] 이영윤 시화유통상가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유통상가 다양한 점포 특성 고려해야…관련법 개정 절실”

“상가의 규모와 입주 점포의 직종별 특성을 고려한 유통산업발전법 등 관련법 개정이 절실합니다”

이영윤 시화유통상가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시화유통상가의 현주소와 유통산업발전법의 맹점을 설명하며 해결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시화유통상가는 현재 대규모점포로 분류돼 프랜차이즈 대형마트와 백화점처럼 재난지원금 및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없고, 정부의 현대화 사업 지원도 받을 수도 없는 상태다.

이 이사장은 “당초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 1987년 도소매업진흥법으로 시작해 대규모 점포와 도소매 매장을 현대화해 발전시키고자 제정됐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점포를 규제대상으로 묶었다”라며 “대규모 상가에 입주한 개별 점포를 프랜차이즈 대형마트와 같은 잣대로 비교하고 분류하는 것도 억울한데 지원 없이 규제만 있어 상가 내 상인들은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시화유통상가에는 23개 동 2천300여개 점포가 입주해 있다. 각 점포는 공구와 페인트 등 산업용품 판매 업체는 물론 편의점, 식당, 부동산, 꽃집 등 다양한 업체로 구성돼 있다.

이 이사장은 “시화유통상가의 전체 규모는 대형마트 못지않지만 그 안에 개별적으로 입주한 점포의 크기는 18~27㎡ 남짓이라 대규모점포가 아닌 ‘소규모 점포 대단지’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라며 “개별 입주 점포의 수익이나 규모가 영세한 만큼 대규모 점포 분류 기준을 단지 면적이 아닌 입주 점포 특징을 고려한 기준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이사장을 비롯한 조합은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입주한 유통상가 특성상 전통시장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유통상가단지의 전통시장 지정을 추진 중이다. 전통시장으로 지정되면 지자체로부터 아케이드 설치는 물론 주차장, 화장실 정비 등 현대화 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어 유통상가 활성화에 숨통을 틀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화폐는 물론 재난지원금 사용마저 불가능하다 보니 입주 상인의 경제 여건이 더욱더 열악해 지고 있다. 조합에서 시흥시에 상가 내 지역화폐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 긍정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라며 “앞으로도 꾸준히 조례안 마련과 전통시장 지정을 촉구하면서 시화유통상가뿐만 아니라 비슷한 입장에 처한 상가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소통팀 = 홍완식·권오탁·김태희·김해령·장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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