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전쟁 70주년이 되는 올해 남북 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표면상으로 대남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이 시발점이었지만 북한군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준이 이뤄지는 대로 각종 군사행동을 예고한 만큼, 남북간 갈등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대북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은 빠르면 수일 내에 개최될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대남 적대 후속 조치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지구에 군대 재배치 등의 사안을 추인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남북간 통신선 차단에 이어 16일 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군사행동 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군사행동 시기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군 총책임자인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등 전면에 나서 압박 수위를 높일 경우 남북이 단순히 ‘말 폭탄’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군사 대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남북간 긴장 국면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1년 ‘아랍의 봄’은 중동의 기존 지형을 흔들어 놓을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전문가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아랍의 봄을 통해 중동민중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화와 사회변혁에 대한 그들의 오랜 염원의 외침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과정에서 수십년 동안 장기 집권했던 중동 독재자들은 가히 드라마틱한 운명을 맞이했다.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된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은 1987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뒤 23년 동안 튀니지를 철권통치 해온 독재자다. 집권 초기 취약 계층을 위한 여러 복지 제도를 통해 중산층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장기집권을 택하면서 독재의 길을 걸었다. 2010년 12월 한 청년의 분신으로 격분한 튀니지 시민들의 민중봉기로 벤 알리 대통령은 2011년 1월 축출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2019년 9월 타국에서 사망했다.
42년 철권통치로 악명 높았던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도 치열한 내전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카다피는 196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동료 장교들과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선포했다. 집권 초기 그는 외세로부터의 자주를 외치며 아랍민족주의를 내세워 제3세계의 민족 해방운동을 지원하고 국내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는 등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테러와 무자비한 인권 탄압 등으로 국제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억눌려왔던 리비아 민중의 분노는 아랍의 봄을 계기로 폭발했고 결국 카다피는 고향에서 반군에게 생포된 뒤 사살되었다. 독재자들의 말로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30대 중반의 젊은 북한 지도자로 인해 미국과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냉전 이후 진영 없는 초국가적 대립이 다발적으로 발생했고 그 이후 IS와 같은 이슬람원리주의의 초국가 세력이 힘을 잃어갔다. 이제 미국과 중국이 주축이 된 국가들 진영으로 대립하는 신냉전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기나긴 여정의 변곡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부디 이를 극복하는 슬기롭고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김수완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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