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부러진 연필과 公正
[변평섭 칼럼] 부러진 연필과 公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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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진 어느 대기업 총수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최근 그 기업에서 임원으로 있던 분에게서 들었다.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며 과감한 투자도 서슴지 않았던 그 총수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술자리라는 게 어느 정도 분위기가 익어 가면 여러 사업 이야기, 직원들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차장급에 있는 직원이 입담 좋게 총수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고 그것이 총수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너 내일부터 부장으로 승진이야!’하고 즉석 결정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로 비위에 상하는 말을 하면 자리를 옮기거나 불이익을 받는데 이런 것이 어떤 절차나 원칙 없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분 주위에는 항상 ‘예스 맨’만 모이게 되더라는 것. 더 심한 것은 그 총수의 해외 출장 때 일이다. 한 번은 총수가 머무는 숙소에 나무가 우거져 새들이 많았다는데 새벽이면 새들 소리 때문에 그 총수가 잠을 설친다며 불평을 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교대로 조를 짜서 새벽에 새 쫓는 작업에 나섰는데 그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기업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소위 ‘갑질의 횡포’이다.

그런가 하면 그 총수의 라이벌 기업은 인사에 엄격한 것으로 유명했다. 친척들은 회사에 절대 관여하지 못하게 하고 차라리 금전적 지원을 할지언정 회사에는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과는 뻔하다. 원칙이 없는 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친인척들을 회사에 절대 관여치 못하게 한 기업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人事가 萬事’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요즘 청·장년을 막론하고 제일 예민한 것이 취업이다. 코로나 19 전염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교회, △△교회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도 이러한 취업과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들 교회는 대개 개척교회. 매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는 숫자는 많은 데 사역할 교회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서는 것이 개척교회이다.

전세를 얻어 교회를 시작했으니 재정의 어려움은 뻔한 것이고, 거기에다 당국이 시키는 대로 교회 문을 닫거나 거리두기를 강행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래서 예배를 강행하고 그러다 보니 ‘코로나 방역’에 취약해져서 감염자가 속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생하는 사목자의 눈에 큰 교회 목사의 아들이 세습하여 목사직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겠는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아버지의 권력에 의해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잡는 것을 ‘아빠 찬스’라 하고, 선배 잘 만나 출세하면 ‘선배 찬스’니 하는 말이 생겨난 것도 결국 이와 같은 공정, 정의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공정, 평등, 정의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미화원 공채나 철도 보수직 등 가리지 않고 취업 공고만 나오면 달려드는 것도 최소한 그런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내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우선 미화원이 되고 거기에서 미래의 꿈을 찾자는…. 요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 역시 바로 그 공정과 정의, 평등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닐까.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에 반대하는 글이 25만 명을 넘었다는 것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번지는 ‘부러진 펜 운동, 로또 취업반대’ 캠페인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정부 여당의 설명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해도 연필을 부러뜨리고 싶은 청년들의 마음을 달래 주기에는 미흡한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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