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유령대학 학위 장사, 일그러진 학벌사회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미 연방정부가 인가한 대학이 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이 대학은 30년 전통에 전 세계 24개국에 글로벌 캠퍼스가 있는 ‘명문대’로 전직 법무부 장관과 국회의원 등 쟁쟁한 교수진이 포진하고 있다. 1년 동안 4학기 과정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소 4년이 걸리는 정규학사 과정을 2년에 마칠 수 있고, 석사과정은 1년 3개월, 박사과정은 1년 8개월 만에 학위취득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기에, 미국에 갈 필요도 없다고 한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할 이 대학의 이름은 바로 ‘템플턴대학교’이다. 미국 명문대학의 학위를 받고 싶어 했던 이들은 이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온라인 강의를 들었고, 그중에는 유력 정치인이나 방송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론을 통해 템플턴대의 우수한 교수진과 수준 높은 수업을 칭찬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템플턴대학교는 아무런 실체가 없는 유령대학이었다. 이사장 김씨가 캘리포니아에 ‘템플턴대학교’라는 이름의 일반회사를 법인으로 설립한 뒤, 현지 인가받은 학교라고 속여 학생을 모집하고 학비를 받아온 것이었다.

또한 김씨는 총장·이사장이라는 허위 직함으로 버젓이 ‘사회 지도층’ 행세를 하며, 각종 대외활동에 나섰고,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종잇장에 불과한 학위장을 미끼로 2015년 5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총 199명으로부터 10억원이 넘는 금액을 편취한 잘못으로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학벌보다는 실력으로 경쟁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틀에 박힌 미사여구만으로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학벌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이력서의 최상단을 차지하는 학력란부터, 이성을 소개받을 때도 늘 따라붙는 ‘어느 대학 나왔어?’라는 질문까지, 학벌이 곧 신분처럼 취급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심지어 결혼을 미끼로 이성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들 중 상당수가 명문대 출신임을 가장하고, 가짜 졸업장이나 가짜 학위증명서를 만들어주는 사업들까지 번성할 정도이니 대한민국은 가히 학벌공화국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템플턴대학교를 거쳐간 학생들 역시 선량한 피해자라고 보기 힘들다. 그들은 학벌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대신, 손쉬운 방법으로 명문대 졸업장을 취득하려다가 실패한 사람들이다. 비록 그들의 행위는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것이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아직도 대다수 선량한 국민들에게 명문대 졸업장을 취득할 것을 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산업혁명기의 점수별 줄세우기를 떠올리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 성실한 노력보다 간판과 학맥이 한평생을 좌우한다는 학벌주의 시스템이 존속하는 한 제2, 제3의 템플턴대학교가 어디선가 또 나타날 것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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