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연극은 문학성을 가지고 좋은 대본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한다면, 저는 기존 문학성과 어긋나고 충돌하는 세대라고 해야 할까요?”
윤시중 극단 하땅세 대표는 지난 9일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 ‘연극이 있는 저녁’ 예술 강좌에서 “내용 즉, 콘텐츠보다는 시각적인 것을 강화한 것이 연극관”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 대표는 지난 2008년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 왕자’라는 아동 가족극을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을 통해 독창적인 연극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4년 ‘파우스트 1+2’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유일하게 아르헨티나 수출이 이뤄지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윤 대표는 1개의 건축물, 사진물, 영감이 하나의 연극 텍스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극관을 가지고 있다. 종전 연극이 좋은 대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윤 대표는 이에 대해 희곡작가였던 아버지와의 일종의 세대 갈등적 성격도 있다고 전한다. 그는 “아버지는 희곡작가여서 문학을 기초로 한 연극을 만드셨는데 나는 문학성에 대한 갈등이 심했고 알게 모르게 반항했던 것 같다”며 “문학성을 중시하는 종전 연극계와 나의 시각적인 세계가 충돌한다”고 했다.
윤 대표가 ‘망신살’이라는 극단명을 지으려고 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윤 대표는 “연극이라고 힘을 주고 보여줄 필요가 있나. 좀 망신당하는 것을 보여주고 만약 우리가 연극을 하면서 틀려도 어떤가하는 생각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 같은 극단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버지가 지어준 하땅세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고 했다.
특히 윤 대표가 만든 아동 가족극도 이 같은 연극관이 잘 반영하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는 윤 대표의 작품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아동가족극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왕자’와 ‘붓바람’, ‘거인이야기’ 등에 대해 설명했다. 또 성인극인 ‘파우스트 1+2’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윤 대표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왕자를 만들면서 그동안 아동 가족극이 가지고 있던 연출 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피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아동 가족극은 연극 시작 전 아동에게 어떤 장면에서 박수를 치고 어떤 장면에서는 조용히 해야 하는지 등을 교육한다. 또 아동의 집중력을 높이고자 레이저 등 화려한 효과도 가미한다. 하지만 윤 대표는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화려한 효과나 연극 전 별도의 공연 없이도 아동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윤 대표는 “아이들이 공연 도중에 악당에 대해서는 야유를 보내고 배우와 아동이 미리 합의한 액션을 취하고 하는 것은 내가 아는 연극과 너무 달랐다”며 “그때는 심지어 아이들이 밉기도 했다. 그래서 아동극의 규칙을 다 버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공연을 굉장히 작은 규모로 만들어서 집중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연극을 만들었고 화려한 레이저 없이도 아름다운 시각적 효과를 유도했다”며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했다.
파우스트 1+2는 대본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에 집중한 작품이다. 윤 대표는 파우스트를 준비하면서 대사도 줄이고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무대 위에는 물과 불 등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며 배우들은 물과 불을 활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는 “가장 오래 준비했던 작품이지만 파우스트 내용을 솔직히 전부 이해하지 못 한 상태에서 만들어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작품이기도 하다”며 “대본을 읽어봐도 어려웠고 전문가들도 잘 모르고 있다고 느껴서 몸으로 풀어보자는 취지로 공연을 준비했다”고 했다. 이어 “대사를 줄이고 이미지를 노린 것이 국내 관객에게는 약점으로 다가왔겠지만 외국 분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며 “이 공연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유일하게 해외 수출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또 윤 대표는 “돌아보면 창피한 작품이기도 한데 창피한 것이 많을수록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극은 하나의 소통 과정인데 옳은 말만 소통일까? 무조건 옳은 이야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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