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몸담게 된 것도 횟수로는 12년이나 되어간다. 그동안의 급진적으로 찾아오는 변화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 안에 역동성이 넘쳐 보였다. 그러다 변화의 속도가 내 머리의 속도보다 빨라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타협안을 제시하게 되었다. 굳이 변화를 따라잡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한번 타협을 하기 시작하니, 그다음부터는 세월의 흐름도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신기한 일이다. 변화에 열정적으로 대응하고, 본인이 속한 조직, 학교, 학과, 학문의 영역에서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자신할 때는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느껴지더니만, 마음 한편에 있던 그 자신감과 부담감을 슬며시 내려놓으니 세월의 흐름이 그저 덤덤하다.
본인이 몸담은 학교의 학생들은 공부를 참으로 열심히 하고 다양한 외국어에 올인하는 학생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렇게 책에 파묻혀 대학 생활을 보내느라 정작 글로벌 공통어이자 문화 코드인 스포츠에 문외한인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어디 학생들만의 문제일까. 먼지 날리는 대운동장과 변변찮은 교양체육 수업들. 세월의 변화에는 무덤덤해지더니만, 흙먼지를 뒤집어쓴 학생들을 보는 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오죽하면 글로벌 언어인 스포츠산업을 가르치고자 교양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수년째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 중이지만, 매번 두 시간가량 막히는 길을 운전해서 갈 때면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가 싶다.
강의하러 서울캠퍼스까지 가면 늘 학교 앞 구두 가게를 들린다. 사장님은 항상 능숙하게 구두를 닦아 주신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하는 건 그분의 마지막 서비스다. 항상 맨손으로 구두약을 발라주신다. 그것도 아주 골고루 두 번이나 말이다. 놀라서 여쭤봤다. 왜 구둣솔이나 장갑을 안 쓰시는지. 그런데 이분의 직업관이 놀랍다. 장갑을 끼면 일단 구두 전체에 골고루 약이 안 묻고 깊게 스며들지가 않아서 이틀이면 광을 잃는다고 한다. 그리고 손으로 약을 묻혀 닦는 것을 보면 손님은 더 대접받는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하신다. 이분의 말에 뒤통수가 얼얼해진다. 그리고 받는 돈은 단돈 사천 원. 뭐랄까 참 죄송스러웠다.
변변치 않은 수고비 얼마를 놓고 일어서면서 생각한다. 대학의 사업자 등록증은 비영리 교육 서비스업이다. 고객들인 학생들에게 난 그리고 우리 대학은 저런 감동을, 아니 저와 같은 확고한 직업 철학을 한 번이라도 보여준 적이 있던가. 많은 깨우침과 깨달음이 있는 순간이다. 세월 앞에 두 손 놓고 무덤덤해져 가는 내 모습이 이때처럼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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