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정치인 아버지와 아들

보 버그달 병장은 2014년 아프간에서 탈레반에게 포로로 잡힌 지 5년 만에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버그달 병장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던 탈레반 다섯 명을 석방하는 것과 맞바꾸었다. 버그달 병장의 귀환은 미국 정부의 비밀 교섭의 성과였다. 그러나 버그달 아버지의 숨은 이야기가 공개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정부는 정부이고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탈레반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며 남자는 턱수염을 길게 기른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염이 길어지자 자신의 동영상을 유튜브 등 SNS에 띄워 탈레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당신들 문화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는 아프간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아프간 언어로 그들에게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아버지의 아들 구출작전은 마침내 탈레반에게도 호감을 주었고 미 정부의 비밀 교섭에 큰 힘을 보탰다.

또 하나의 ‘아버지와 아들이야기’이다 ‘웰 컴 투 비디오’라는 세계 최대 아동 성(性)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하던 손모씨(24)는 1년 6개월이라는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석방됐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형기 만료된 아들 손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아들이 가상화폐 계좌를 개설해 범죄 수익금을 거래했고 그 돈으로 입원 중인 할머니의 치료비를 지불하여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를 했을까. 여기에는 아들을 위한 고차원의 전략이 있었다. 아들 손씨는 2018년 미국 연방 배심원에서 성범죄 등 6개의 혐의로 한국 사법당국에 송환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만약 손씨가 미국에 송환되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최대 20년의 징역형과 50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평생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의 형량이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5년 징역에 3천만원 벌금이 전부이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인 것이다.

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그는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와 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 등, 4채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데 아파트 한 채는 매각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데 뒤늦게 밝혀진 것은 그 한 채가 매매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에게 증여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어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욕을 먹더라도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선택한 것일까. 더욱 국민에게 충격을 준 것은 재산신고에서 10억원을 누락한 것이다. 지난 총선 때 58억원으로 재산신고를 했는데 실제로는 67억7천만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총재산은 그동안 특별한 소득도 없이 100억원대에 이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평도 나왔다. 즉,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욕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정말 ‘아버지와 아들’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이어야 하는가. 탈레반으로부터 아들을 구하고자 이슬람 율법에 따랐던 아버지, 미국 송환을 막고자 아들을 고발한 아버지,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어 그 명예를 누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처신에 눈총을 받는 아들. 역시 가장 조심해야 할 관계는 정치인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야 할 정치인 아들인 것 같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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