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2.무의식 속 자주 사용하는 일본어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2.무의식 속 자주 사용하는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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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민족의 정체성… 우리말 바로 알고 사용하자

행정법률 용어, 여전한 일본어 한자 사용

광복 75주년인 지난 8월 15일, 이 날은 국경일이라 집집마다 태극기를 게양한다. 이 날뿐만 아니라 3·1절, 개천절, 제헌절, 한글날도 국경일이므로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게양(揭揚)’이라는 표현이 일본어 잔재라는 것이다. 한자식 표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말이라고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썼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말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태극기를 올리다’, ‘태극기를 단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 쓰이는 말 중에는 한자식 표현의 일본어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잉꼬부부’이다. 매스컴이나 언론에서 다정하고 금슬이 좋은 부부를 소개할 때나 우리 주변에서도 이러한 부부를 ‘잉꼬부부’라고 한다. 잉꼬부부에서 ‘잉꼬’는 일본어 ‘잉꼬(鸚哥, いんこ)’에서 가져온 말이다. 순화된 우리말은 ‘원앙부부’이다.

이와 같은 한자식 표현의 일본어는 의외로 많다. 한 해를 보내면서 아쉬운 점은 달래고 마무리하기 위해 모임을 갖는데, 이를 흔히 ‘망년회(忘年會)’라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곤 하는데 이 역시 일본어이며, 우리말로 순화하면 ‘송년회(送年會)’이다. 이번 연말에는 망년회보다는 송년회로 한 해를 정리해 보자.

일본어 한자는 주로 행정 및 법률 용어와 일반 서식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것이 ‘가감(加減)’과 ‘승제(乘除)’인데, 이는 ‘더하고 빼기’, ‘곱하기와 나누기’이다. 승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감이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여전히 그냥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가건물(假建物)’은 ‘임시건물’, ‘공람(供覽)’은 ‘돌려봄’, ‘감봉(減俸)’은 ‘봉급 깎기’, ‘노견(路肩)’은 ‘갓길’, ‘견학(見學)’은 ‘보고 배우기’, ‘결재(決裁)’는 ‘재가’, ‘고객(顧客)’은 ‘손님’, ‘고수부지(高水敷地)’는 ‘둔치’, ‘과세(課稅)’는 ‘세금’ 등 마치 우리말 같지만, 적지 않은 일본식 표현이 우리 생활에 쓰이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우리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자식 일본어 중에 우리말로 순화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나대지(裸垈地)→빈 집터’, ‘나염(捺染)→무늬찍기’, ‘낙과(落果)→떨어진 열매’, ‘납득(納得)→이해’, ‘납입(納入)→납부’, ‘내주(來週)→다음 주’, ‘내역(內譯)→명세’, ‘노점(露店)→거리가게’, ‘다반사(茶飯事)→예삿일·흔한 일’, ‘당분간(當分間)→얼마 동안’, ‘대기실(待機室)·대합실(待合室)→기다림방’, ‘가계약(假契約)→임시 계약’, ‘가성소다→양잿물’, ‘가출(家出)→집 나감’, ‘견적서(見積書)→추산서(推算書)’, ‘결근계(缺勤屆)→결근신고서’, ‘결식아동(缺食兒童)→굶는 아이’, ‘계주(繼走)→이어달리기’, ‘고객(顧客)→손님’, ‘고참(古參)→선임’, ‘공란(空欄)→빈칸’, ‘구보(驅步)→달리기’, ‘굴삭기(掘削機)→굴착기’, ‘기라성(綺羅星)→빛나는 별’, ‘마대(麻袋)→포대·자루’, ‘명찰(名札)→이름표’ 등 무수히 많다.

요즘은 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지만, 봄과 가을이면 화사한 꽃과 단풍을 보기 위해 들로 산으로 간다. 이때 버스를 대절하는데, ‘대절(貸切)’이라는 것도 일본식 표현이다. 우리말로는 ‘전세(專貰)’가 더 적합하다고 한다.

일본어 잔재가 많은 건설과 인쇄 현장

건설과 토목, 인쇄 현장에는 특히 일본어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순화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오래 전부터 입에 익숙해 현장에서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일본어가 우리말처럼 공용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공사 현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공구리 친다’라는 말이 있다. ‘공구리(コンクリ)’는 콘크리트의 일본어 ‘コンクリト’에서 줄어든 말이다. 공구리는 ‘양회반죽’ 또는 원어인 ‘콘크리트’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가다(土方, どかた)’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말로 하면 ‘공사판 노동자’를 뜻한다. 그밖에 자주 쓰는 일본어와 순화한 우리말을 보면, ‘가쿠목(角木)’은 ‘각목’, ‘가타(形)’은 ‘틀 또는 거푸집’, ‘낫토(ナット)’는 ‘너트’, ‘네지(螺子, ねじ)’는 ‘나사’, ‘니빠(ニッパ)’는 ‘니퍼’, ‘단도리(段取り, だんどり)’는 ‘채비 또는 단속’, ‘단카(擔架, たんか)’는 ‘들 것’, ‘데모도(手許, てもと)’는 ‘보조공 또는 곁꾼’, ‘도끼다시(硏ぎ出し)’는 ‘갈기 또는 갈아 닦기’, ‘도라이바(ドライバ)’는 ‘나사돌리개 또는 드라이버’, ‘도란스(トランス)’는 ‘변압기’, ‘메지(目地, めじ)’는 ‘줄눈’, ‘멧키(鍍金, めっき)’는 ‘도금 또는 금 입히기’, ‘판네루(パネル, panel)’는 ‘널빤지’, ‘보루바코(ボルばこ)’는 ‘골판지 상자’ 등이 있다.

인쇄 현장에서는 ‘교정스리(→교정쇄)’, ‘도비라(→속표지)’, 세네까(→책등), ‘하시라(→제목)’, ‘찌라시(→전단지, 낱장광고)’, ‘구아이(→물림여백)’, ‘하리(→맞춤선)’, ‘호도시(→자투리)’, ‘시야케(→마무리)’, ‘소부(→판굽기)’, ‘도무송(→때냄기)’ , ‘조아이(→장합)’, ‘시로누끼(→희게 빼기)’, ‘돈땡(→도려찍기)’, ‘하리꼬미(→터잡이)’ 등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남용되는 일본어 잔재들

가끔 주변에서 ‘쿠세가 좋지 않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습관이나 생활태도 등이 좋지 않을 때 나이든 사람들이 사용한다. ‘쿠세’는 일본어 ‘くせ(癖)’를 강하게 발음한 것으로 ‘버릇’이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쿠사리를 듣다’라는 말도 듣기도 하는데, ‘쿠사리(腐り)’는 ‘면박’ 또는 ‘핀잔’을 뜻한다. ‘나와바리(繩張り, なわばり)’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여기는 내 나와바리야”라고 하는데, “여기는 내 구역이야”이르는 뜻이다. ‘난닝구(ランニング)’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는데, ‘러닝셔츠’의 일본식 표현이다.

이외에도 평소에 자주 듣거나 사용하고 있는 일본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라이방(ライバン)’: ‘Ray Ban’의 일본식 표기로 ‘보안경 또는 색안경’, ‘레미콘(レミコン)’: ‘ready-mixed concrete’의 일본식 표현으로 ‘회반죽’, ‘레자(レザ)’: ‘leather’의 일본어로 ‘인조 가죽’, ‘레지(レジ)’: ‘register’의 일본어로 ‘(다방)종업원’, ‘리야카(リヤカ)’: ‘rear car’의 일본어로 ‘손수레’, ‘마후라(マフラ)’: ‘muffler’의 일본어로 ‘목도리’, ‘만땅(滿タン)’: ‘가득 채움’, ‘맥고모자(麥藁帽子)’: ‘밀짚모자’, ‘멜로극(メロ劇)’: ‘통속극’, ‘몸빼(もんぺ)’: ‘일 바지’, ‘무뎃뽀(無鐵砲, むてっぽう)’: ‘막무가내’, ‘바케쓰(バケツ, bucket)’: ‘들통, 양동이’, ‘백미라バックミラ)’: ‘back mirror’의 일본식 표기로 ‘뒷거울, 백미러’, ‘벤또(辯當, べんとう)’: ‘도시락’, ‘비까비까(ぴかぴか)하다’: ‘번쩍번쩍하다’, ‘빤쓰(パンツ)’: ‘팬티’, ‘쓰키다시(突き出し, つきだし)’: ‘곁들이’ 등등.

아무리 좋은 외래어보다도 한글이 더 휼륭

치매 예방에 좋다는 설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투를 즐겨하는데, 그중에 ‘고스톱’이라는 것이 있다. 고스톱에서 많이 사용하는 ‘고도리’, ‘쇼당’, ‘나가리’ 등은 모두 일본어로 ‘새 다섯 마리’, ‘담판’, ‘무효’ 등으로 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자주 쓰다보면 우리말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차량을 운전하다 보면 타이어가 구멍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무심코 ‘빵구 났다’라고 한다. ‘빵구’는 ‘puncture’를 일본어로 표기한 것인데, 이 역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 잔재이기도 하다.

흔히 요즘 시대를 국제화 또는 세계화라고 한다. 외래어는 ‘글로벌 시대’라고도 한다. 그렇다보니 우리말보다는 외래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가고 있다. 어쩌면 외래어를 쓰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낄 정도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방송에서 너무 외래어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로드맵’, ‘테스크 포스’, ‘데스노트’ 등 외래어가 언론계와 정치계에서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다. 더욱이 ‘겐세이’, ‘야지’, ‘뿜빠이’ 등이 일본어 잔재가 여전히 사용되고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거리를 걷다보면 어원조차 알 수 없는 간판의 외래어 표기는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한때 우리말 이름 짓기가 유행한 때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고운 우리말을 이름에 넣어서 작명하고 있다. 최근 한글문화연대는 국어문화원연합회, 티비에스와 함께 <함께 써요! 쉬운 우리말-우리말 고운말> 사업을 펼치고 있다. 9월 1일부터 매주 평일 오전에 방송되는 <우리말 고운말>은 어려운 공공언어, 교통언어 등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소개하고 있다. 9월 9일 방송에는 ‘키오스크→무인 단말기’와 ‘원스톱→한자리, 일괄’이라는,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준 바 있다.

그동안 외래어가 너무 남용되어 우리말이 사라져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더욱이 ‘일제강점’이라는 불행한 시기를 겪은 상황에서 외래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잔재까지 일상생활에서 남용되고 있다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글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표기 수단’ 또는 ‘문자’이라고 한다. 이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글이 정작 우리 생활에서는 소홀하게 또는 천대받고 있지 않나 한다. 언어는 우리의 살아가는데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인으로 한글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까. 얼마 후면 한글날이 돌아온다. 아무리 좋은 외래어라도 우리말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성주현 숭실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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