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 연극이 있는 저녁 예술강좌] ⑥기국서 연출가 특별 대담

"사람에 대해 재발견하는 것 그것이 연극의 가치"

기국서 연출가가 연출한 관객모독 포스터

“사람에 대해서 재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연극이 가지는 예술로서의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기국서 극단76 연출가는 지난 23일 인천 중구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 ‘연극이 있는 저녁’ 예술강좌에서 “어떤 사람이나 지도자가 자신보다 못하면 웃게 되고 우월하면 크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며 “이를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고 배우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연극”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기 연출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실험주의 연극 연출가다. 기 연출가의 대표 작품인 ‘관객모독’은 배우가 연극,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관객에게 욕을 하며 끝을 내는 작품이다. 초연이 이뤄진 배우가 화난 관객을 피해 대피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는 사뮈엘 베케트의 ‘엔드게임’을 연출했다.

이날 강연은 기 연출가의 연극관과 어떻게 연극을 관람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이후 김태희 연극평론가와 기 연출가와의 특별 대담 형식으로 흘러갔다. 기 연출가는 극장이 인간관계가 건조해진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인식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극장에서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옛날에 유럽에서도 그렇고 최근 뉴욕에서도 느꼈는데 극장을 가면 입구에서부터 로비, 무대까지 분위기가 굉장히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모인 것을 느낀다”며 “이는 쇼핑몰 등 일반적인 공공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할 때와 전혀 다른 극장만이 가진 느낌”이라고 했다.

▲ 엔드게임 공연
기국서 연출가가 연출한 엔드게임의 장면

이어 기 연출가는 “인천에도 극장이 많이 있는데 극장이 어디 있는지를 알고 한번 가서 무엇을 하는지 살펴봐달라”며 “2만~3만원의 요금으로 어른들의 예술적이고 지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 연출가는 앞으로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코미디야 말로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인데 최근 우리나라에는 코미디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이 기 연출가의 문제의식이다. 기 연출가는 “찰리채플린 하나로 한 나라가 가진 격이 올라간 사례도 있고 우리나라도 20~30년 전에는 괄목할 코미디언이 있어서 대중이 마음을 둘 곳도 있었는데 최근은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 열정을 가지고 몰두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코미디 하는 분과 많이 만나고 좋은 코미디를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특별대담은 기 연출가가 했던 작품 주제에 대해 설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관객모독부터 햄릿 시리즈,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기 연출가의 대표작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 엔드게임 포스터
기국서 연출가가 연출한 엔드게임 포스터

▲김태희 평론가=기국서 연출가를 대표하는 작품은 실험극 관객모독이다. 이 이야기로 대담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관객모독이란 어떤 작품이고 어떻게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됐나?

▲기국서 연출가=관객모독은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페터 한트케가 25살에 쓴 첫 희곡이다. 이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1968년 정도였는데 대본을 읽고 한 일주일은 연극을 만들어야겠다는 가슴 뛰는 심정으로 책을 끼고 다녔다. 너무 도발적인 제목부터 연극과 관객에 대한 논문적인 이야기, 결국 욕설로 끝이나는 엔딩 등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다만 스토리가 없어서 이를 어떻게 연출해야 할까 고민했다. 한트케가 이 작품을 설명할 때 언어 연극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나도 띄어쓰기를 왜곡하는 등 언어유희 요소를 가미해서 극중극을 꾸몄다. 이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적으로도 성공 요인이었다.

지난 23일 김태희 연출가가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연극이 있는 저녁’ 6번째 강연 시간에 기국서 연출가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이승욱기자

▲김태희 평론가=환호한 관객은 이 작품을 잘 이해한 관객일 것 같다. 그러나 이게 욕설이 들어가면서 끝나고 작품 자체가 가지는 도발성 때문에 사실주의 연극만 있었던 당시 1970년대 관객에게는 충격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불쾌한 반응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땠나?

▲기국서 연출가=이 연극이 당초 11월 1일부터 첫 공연을 하기로 했었다. 근데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나서 국상 기간이라며 1주일간 공연이 금지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극을 유흥과 같이 취급한 야만적인 처사였다. 이후 제목이 관객모독이라서 많은 관객이 보러왔는데 처음에는 너무 당혹스러웠는지 의자가 무대로 날아오고 조명기가 깨지고 배우가 피신하고 그랬다. 하지만 2번째 공연은 좀 더 완화하고 4번째는 더 완화하고 점점 적응이 되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는 친근해지기도 했다.

▲김태희 평론가=의자를 집어던진 것은 정말 충격이다. 관객모독이 1970년에 초연하고 계속 재공연이 이뤄지고 있는데 버전이 정말 많다. 여러 버전이 나오는 동안 이것 하나만은 변하지 않겠다는 것 그런 게 있나?

지난 23일 기국서 연출가가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연극이 있는 저녁’ 6번째 강연을 마친 후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이승욱기자

▲기국서 연출가=초연을 올렸을 때 가장 충격이었다. 관객과 배우가 같이 욕을 해서 후련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욕을 즐겁게 받아들이더라. 오래 하다 보니 매끄러운 흥행작품이 되더라.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이 작품은 1회 2회로 끝나야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관객이 즉흥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무대가 펼쳐지면 좋아한다. 이런 게 흥행 요소가 된 것 같다.

▲김태희 평론가=햄릿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햄릿은 첫 작품이 1980년대였는데 시대적 상황과 공명하는 작품이다. 초연했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다.

▲기국서 연출가=당시 유신 정권,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12·12 군사 쿠데타로 1980년대 서울의 봄이 무산되고 바로 광주항쟁이 생긴다. 그 때 29살이었으니 정말 나도 광주에 어떻게든 가려고 했다. 서울역에서도 봉쇄가 너무 길어지고 학생은 버스에 깔리고 그랬다. 집에까지 걸어오는데 광화문에 온통 파편투성이다. 벽돌은 다 깨져있고 최루가스도 있다. 이것을 작품화하고 싶어서 생각하다가 햄릿이 떠올랐다. 당시 신아일보 해직기자가 돈을 투자하면서 기획이 시작됐다.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에 올린 원본은 나중에 다 해체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김태희 평론가=원본 대본과 실제 공연이 달랐을 때 받는 불이익은 없었나.

▲기국서 연출가=식민지 시대 때는 순사가 와서 봤는데 그 때도 몰래 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근데 뭐라고 할 수 없다. 등장인물이 공수부대 옷을 입고 나오는 등 은유적으로 등장하더라도 언어로 직접 표현하지는 않는다. 대본은 햄릿의 이야기지 광주 민주화 운동엔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거다.

▲김태희 평론가=햄릿 시리즈를 보면서 연극이 시대와 공명하는 장르라는 것을 느낀다. 햄릿은 정말 그 시대가 밀어올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기국서 연출가=아무래도 연극과 예술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정파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사회가 어떤 사건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정서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이런 것을 예민하게 파악하는 것이 작가들이고 연극인이다. 선동선전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시대를 통해 영감을 받고 이를 나름대로 해석한다.

▲김태희 평론가=햄릿 시리즈를 보면 고전을 과감히 해체하고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햄릿의 원동력인데 요즘에도 고전을 해체하는 작업이 많다. 햄릿 시리즈가 이미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질문을 드리면 연출가가 생각하기에 고전의 역할은 무엇일까?

▲기국서 연출가=고전은 억지로 듣는 것이 아니다. 고전에는 틀림없이 엄청난 일이 있고 이를 느낀다. 내가 옛날 신촌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 우연히 수제천이라는 한국 전통 궁중음악을 들었다. 대낮에 비몽사몽 졸고 있는데 수제천이 들려온 것이다. 그 때 계속 새로운 경지가 나타난다는 것을 느꼈고 계속 듣다보면 나중에는 정말 그 세계에 반쯤 빠져든다. 하늘이 열리고 갑자기 폭포가 쏟아지고 바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 한 환상을 경험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깜깜해지더라. 그때 박소리가 나면서 수제천이 끝났음을 알린다. 놀라운 경험이다. 전통 고전이 위대하다는 것을 거기서 느낀다.

▲김태희 평론가=가장 최근에 공연한 작품이기도 하고 마찬가지고 고전을 가지고 만든 엔드게임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해 달라.

▲기국서 연출가=처음에 연극과 접한 것은 동생이 주연을 맡았던 사무엘 베케트의 한 작품을 통해서다. 그 뒤로 사무엘 베케트의 해피데이,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도 했다. 엔드게임도 옛날부터 하고 싶었다. 근데 이 연극은 나이든 배우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작년에 우리 극단 단원 중 옛날부터 함께한 단원은 65살 근처가 됐으니 이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한국 연극에서 이 작품을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더라. 하지만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미학적으로 결과적으로 성공했는지는 두 번째 문제다.

▲김태희 평론가=연극을 봤는데 다른 분들에게는 낯설 것 같다. 작품의 어떤 부분이 미학적으로 연출가를 사로잡았던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

▲기국서 연출가=이 작품은 연극적이다. 스토리적인 것도 아니고 사건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연극적이다. 연극만이 이 작품의 형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굉장히 노련한 연기를 해야 성공한다. 이 작품이 배우가 갇혀있고 그 안에서 게임하듯이 난해한 말로 논다. 굉장한 코미디도 숨어있고 폭력성도 숨어있다. 이것이 다 한 장소에서 노출이 되고 또 최근 코로나에서 관객이 처한 현실과도 연결되니 관객이 정말 많이 웃었다.

이승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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