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임진강은 흐른다

이미륵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기억하는가. 어릴 적 서가에 꽂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큼 소설가의 이름과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삶을 독일에서 독일어로 출판한 소설과 젊은 여성법학도가 뮌헨의 유학생활을 쓴 수필집은 표지만으로도 낭만 가득했다. 물을 보고 자라지 않은 필자에게 강은 멀리 있는 위대한 자연일 뿐이고 삼천리 금수강산 끝자락에 있다는 압록강은 아득히 먼 곳이었다.

올해 경기도가 불법 하천·계곡 정비를 하면서는 길을 가면 하천만 보였다. 작은 땅덩어리에 물이 이리도 많았나 싶었고 국가하천인지 지방하천인지 소하천인지 입간판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물의 색깔도 흐름도 물속 생명체도 세심하게 보았다. 주변을 걷고 계곡물에 손과 발을 담갔다. 경기북부를 대표하는 강이라면 임진강과 한탄강을 꼽을 수 있다. 둘 다 북한에서 발원해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한으로 내려온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한탄강은 연천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하고 임진강은 파주 교하에서 한강과 만나 서해로 흐른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임진강은 자신이 선 곳과 경험만큼 다양할 것이다. 연천의 당포성과 숭의전, 파주의 화석정, 반구정에서 마주하는 임진강은 잔잔하고 손에 닿을 듯하다. 남북의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고랑포에서 임진강은 넘을 수 없는 분단선으로 다가온다. 서울에서 고랑포 지나 개성까지 버스가 다녔다는 얘기는 전설의 고향 속 이야기 같다. 땅은 끊겨 사람은 오갈 수 없으나 강은 막힘없이 흐른다. 북한에 비가 많이 오면 남한도 홍수 피해를 같이 입는다. 임진강 상류에 황강댐이 생기면서 파주, 연천은 농업용수가 부족하다. 2009년 북한의 황강댐 무단 방류로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북한은 우리 측 피해가 없도록 황강댐 방류 시 사전에 통보하여야 한다. 임진강 수계의 안정적 관리가 필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9월 ‘2020 DMZ 포럼’에서 남북 공동방역 등 5가지 협력사업을 제안했다. 남북 공동방역 및 의료협력, 임진강 수계관리 협력, 접경지 사업 남북 공동 조사·연구, 남북 공동 산림복원 및 농촌종합개발, 대북 수해복구 지원이다. 한강하구도 흘러야 한다.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에서 인천시 강화군 말도까지 67㎞, 정전협정상 민간선박 통행이 가능한 중립지역이나 다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습지보호구역, 철새 도래지 등 생태적 보전, 과거 포구를 비롯한 역사 유적지, 준설을 통한 뱃길 개방 등 보전하고 가꿔야 할 무궁한 가치를 지녔다. 2018년 남북은 한강하구 남북공동 수로조사를 마쳤다. 민간선박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니고, 평화공간으로 복원될 날을 기다려본다.

군사분계선은 남북을 가르고 사람들을 떼어놨으나 강은 나뉘지 않았다. 새처럼 강도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흘러간다. 물줄기를 틀어도 흘러가 다른 강과 만나고 더 큰 바다로 간다. 임진강이 남북을 가르지 않고 흐르듯 남과 북의 삶도 계속될 것이다. 망향의 설움과 관광지가 교차하는 곳, 연강나룻길, 선조의 피난길, 평화누리길, 황포돛배, 매운탕 등 조각난 기억이 아닌 분단 이전의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는 길이어야 한다.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따스한 남북의 만남과 협력이 절실한 때다.

김효은 경기도 평화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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