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했다. 비견할 데 없이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기업인이었다. 무노조 경영의 반노동적 외길이었다. 정치ㆍ검찰에 숱하게 휘둘린 특정 진영의 적이었다. 우리는 이 가운데 한 가지만 그의 영전(靈前)에 기록할까 한다. 그가 기업을 통해 국민에 남긴 먹거리다. 세계 시장에서 돈을 벌어 이 나라 곳간을 채웠던 국부(國富)의 창출이다. 누구도 비견 안 되고, 누구도 부인 못 할 진실일 것이다.
선대 이병철 회장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성장을 이뤘다. 세계 시장을 향한 변화와 혁신의 정신이 출발이었다. 이제 전설이 된 그의 어록이 이를 증명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그의 훈시다. 이후 삼성은 세계를 향해 나갔다. 가전 분야에서 반도체 시장으로 판을 바꿨다.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다. 이제 삼성 관련 주식은 국내 시총의 20%를 넘는다. 진정한 의미는 국제 경쟁력이다.
그가 쓰러진 것은 2014년이다. 2015년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593조원이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비중은 20.4%다. 수출의 4분의 1을 삼성이 담당했다. 영업 이익도 알토란처럼 챙겼다. 2018년에만 58조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도 놀랄 만큼 컸다. 세계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을 따라잡고 1위에 올랐다. 현재 세계 1위 품목은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나 된다.
선대 삼성은 현대, 대우 등과 경쟁을 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에 모든 걸 걸었다. 당시 세계 1위 품목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랬던 삼성이 세계와 경쟁했다. 세계 속 1등 기업으로 컸다. ‘이병철 삼성’과 ‘이건희 삼성’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가치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수출의 중요성은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수출만이 살길이며 생존 수단이다. 그 국가적 사명은 홀로 짊어져 온 기업인이 이건희 회장이다. 이 주장에 누가 있어 이의를 제기하겠나.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 했다. 우리는 여기에 ‘기업인은 죽어 국부를 남겨야 한다’는 말을 더하려 한다. 자식에 물려줄 부가 아니라 국민에 안겨줄 부 말이다. 아울러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정치인들에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 정치는 끝없이 이 전 회장을 휘둘러 왔다. 때론 정치 자금 강요로, 때로는 뇌물 착복 압박으로, 때론 진보적 기준으로 휘둘렀다. 당사자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종결 안 된 논란이 많다.
고 이 회장의 별세를 빌어 뭍 정치인에게 묻고 싶다. 기업인 이건희는 국부를 남기고 갔다. 정치인 당신들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남길 게 있기는 한가. 고인이 했던-그래서 정치로부터 혹독한 눈총을 받았던- 이 말도 이제 역사 속 기록이 됐다. “솔직히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행정력은 3류급, 정치력은 4류급, 기업경쟁력은 2류급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95년 4월13일, 중국 방문 중에 그가 했던 이른바 ‘베이징(北京)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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