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기 위협… 차량 포위… 결과 불복...2020 美대선, 애들 볼까봐 무섭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우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마디로 못 볼 선거를 봤다. 자유주의 종주국이 상영한 막장 정치 드라마였다.

흡사 영화에서 볼 법한 난장판이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는 후춧가루, 스프레이, 총이 등장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시민을 위협한 상황이다. 남북 전쟁 당시 남부군을 이끌었던 리 장군 동상을 막는 장면이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아이콘으로 여기는 리 장군이다.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추격전도 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주도한 실력행사다. 캘리포니아 흑인 거주 지역에서도 트럼프 지지자들의 소동이 있었다.

올 4월 초 언론에 크게 보고된 선거 관련 사건이 있었다. 전북지방경찰청이 요란스럽게 수사했던 범죄다. 길거리에 게시된 선거 현수막을 훼손한 일이다. 담뱃불과 라이터로 훼손한 범인이 검거됐다. 아무런 의도 없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로 밝혀졌다. 그래도 범행자는 처벌됐다.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다. 미국 대선에서 목격한 집단 행위는 가히 충격적이다. 총 위협, 고속도로 추격전…. 행여라도 모방할까 걱정이다.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정치가 있다. 선거일 전부터 결과 불복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자체 승리 선언’이라는 해괴한 단어도 등장했다. 지지자들에 ‘결과에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선거 당일까지 두 후보의 선동은 계속됐다. 트럼프는 “우리가 대승했지만, 그들이 선거 훔치려고 한다”고 했고, 바이든은 “이번 대선, 우리는 승리 위한 궤도에 올랐다”고 했다. 선거일 이후 ‘계속 투쟁하자’는 선창을 외친 셈이다.

우리 정치사에 ‘결과 불복’은 없었다. 특히 ‘대선 결과 불복’은 금기어와도 같았다. 15대 대선에서 진 한나라당이 일부 지역 재검표를 요구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측이 ‘대선 불복이냐’고 하자 ‘그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18대 대선에서 진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문제 삼았다. 새누리당이 ‘대선 불복이냐’고 따졌고 역시 ‘그건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런 우리의 결과 승복 문화가 이번에 못된 걸 배울까 걱정이다.

“땅이 너무 메말라 불꽃이 뛸 정도다.” 국제위기그룹의 스티븐 폼퍼 정책 담당 선임 이사의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칼처럼 대립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평이다. 그 말대로 대선 당일 미국은 초긴장상태에 돌입했다. 매사추세츠주, 앨러배마주, 애리조나주, 텍사스주 등은 주 방위군을 배치했다. 백악관은 경내 주변으로 높은 울타리를 쳤다. 상점들은 쇼윈도우를 합판으로 가려 약탈에 대비했다. 이게 2020년 미국의 모습이다.

세계인이 목격한 가장 미개하고 원시적 선거였다. 충돌, 협박, 선동, 불복…. 선거에 없어야 할 모든 추태가 난무했던 선거였다. 트럼프 혹은 바이든, 당선인엔 관심 없다. 이번 선거가 혹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크게 보였을까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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