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세 거장이 한자리에 뭉쳤다. 배우 손숙(76), 한태숙(70) 경기도극단 예술감독, 원로 작가 정복근(74)이 오는 19일부터 2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경기도극단의 올해 첫 대면공연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를 무대에 올린다. 박현숙, 한범희, 윤재웅, 육세진, 노민혁 배우 등 경기도극단 단원 18명이 함께 열연한다.
셋이 합쳐 연극계 경력만 150년에 달하는 이들은 어떤 에너지로 관객과 마주할까. 공연에 앞서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손숙은 세 마디로 명료하게 말했다. “한태숙 연출의 작품이 어렵다. 쉬운 건 안 만든다. 대신에 잘 만든다.”
작품의 서사는 클래식하지만, 표현 양식은 배우의 몸을 떠는 행위를 통해 바람에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타나낸다. 한 감독은 “세대를 넘어선 바람, 정치적 바람, 시대의 고유한 강풍 등이 배우들에게 체화돼 나타난다”며 “올해 경기도극단의 첫 대면공연인 만큼 더 잘 보여드리고 싶다”고 운을 뗐다.
작품은 극 중 고위공직자 부인 ‘성연’이 민주화 운동을 하러 떠난 딸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광복 직후와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를 오가며 “존재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특별한 야망 없이 보통 사람이길 원했던 평범한 중년부부의 삶이 우리의 고질적인 사회문제 앞에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그들의 음악과 춤, 작은 몸짓으로 드러낸다.
월북 시인 임화의 부인이자 소설가 ‘지하련’ 역을 맡은 손숙은 “참고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인물을 해석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시대가 낳은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돌이켜보면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갈등은 사상과 ‘진보냐 보수냐’가 전부였다”며 “진영논리가 서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치가 있는지를 물러서서 바라봤다. 주인공인 지하련 작가의 시선을 떠올리며 세태를 바라보는 내용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역 극단과의 공연이 처음인 손숙은 경기도극단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손숙은 “와서 보니 도립극단에 단원이 많고, 또 훈련이 잘 된 배우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한편으론 도와 기관에 매우 감사했다”며 “이곳처럼 인재들에 더해 한 감독 같은 훌륭한 감독을 지역에 데리고 오면, 지역에서도 결코 서울공연에 뒤떨어지지 않는 공연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관객과 모처럼만에 만나는 공연에 경기도극단 배우들은 물론, 연극 경력 50년인 배우도 설렘을 감추질 못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이 공허하고 힘든데, 공연이 마음을 위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을 움직이고 오셔서, 누구든 위로받고 가시길 바랍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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