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명동’ 신포동 '황폐화'...매서운 겨울바람만

쓸쓸함 더 묻어나는 신포 문화의 거리, 인천 명동은 옛말...70~80% 떠날 준비

1980~1990년대 ‘인천의 명동’ 신포동.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옛 영광의 흔적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코로나 19 직격탄까지 맞으면서 매서운 겨울바람만이 건물을 휘감고 있다.

더 클래식 멤버로 마법의 성을 부른 인천 출신 가수이자 금융인인 김광진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중구 신포동을 ‘인천의 명동’이라고 소개했다.

인천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는 1980년대 신포동은 ‘인천의 명동’ 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김씨는 “당시에 이 곳에 나오면 발을 뗄 때마다 친구와 선배 등의 지인을 만나 인사하기 바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80~90년대 신포동은 인천의 중심상권이자 상징이었다. 경동사거리 입구에서 지금은 없어진 금강제화 매장까지 이어지는 패션 거리(신포 문화의 거리)는 인천의 가장 번화가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파로 붐볐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에는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주안과 구월동, 부평, 송도국제도시 등으로 중심상권이 이동하면서 신포 문화의 거리는 서서히 황폐화하고 있다.

코로나 19는 이 곳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신포문화의 거리와 신포동이 예전만 못하지만 요즘은 더해. 저녁 8시가 되면 이 곳은 코로나 19 전의 새벽 1시 같아. 사람 찾기가 어려워”. 아직도 홍예문 밑에 사는 신포동 터줏대감인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이사장의 푸념에 쓸쓸함이 한껏 배어 있다.

신포 문화의 거리를 찾은 12일. 을씨년스럽기만하다. 황금기에 특급 몫을 자랑했던 매장 곳곳이 텅텅 비어있다. 임대 안내문을 붙은 매장은 쓸쓸함을 더한다. 60여개의 매장 중에 9개가 비었거나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놓은 ‘개장 휴업’ 매장도 상당수다.

신포문화의 거리에 있는 A 부동산 관계자는 “가뜩이나 침체한 상황에서 코로나 19 직격탄까지 맞아 신포 문화의 거리 내 매장의 70~80% 정도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손님들의 발길도 뜸하다”고 말했다.

신포 문화의 거리 뒷골목은 더 참담하다. 곳곳이 폐업했거나, 임대로 나온 매장이다.

이 곳을 떠나려는 임대인이 늘면서 임대료도 30% 정도 내렸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임대인과 같이 살려고 임대료를 내리는 착한 건물주도 있지만 빈 매장을 다시 채우는 일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태가 이어지면 이 곳은 황금기인 옛날을 그리워하며 쓸쓸히 손님을 기다리는 몇 개의 가게만 남을 것이다.

신포 문화의 거리 상인들은 ‘인천 내항과 동인천 역세권 복합 개발’에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나 이뤄질지 기약이 없다.

이현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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