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겨울 들판을 거닐며
[詩가 있는 아침] 겨울 들판을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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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판을 거닐며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허형만
1973년 <월간문학>(시), 1978년 <아동문예>(동시) 등단.
시집 <황홀> <바람칼> <음성> 등 19권과 일본어시집 <耳を葬る>(2014),
중국어시집 <許炯万詩賞析>(2003). 한국예술상,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한국시학상, 윤동주문학상 등 수상.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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