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이순신 장군과 씨름협회
[경기시론] 이순신 장군과 씨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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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32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관직에 진출했다. 그는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선조(宣祖)와 달리, 명량에서 백의종군하며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살신성인의 정신은 그를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하게 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위기 속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모습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지쳐 있는 장수들과 군사들을 위로해 주는 세심한 모습도 잘 드러나 있다. 그의 1596년 병신일기(丙申日記)를 보면, ‘군사 중에서 힘센 사람을 뽑아 ‘씨름(角力)’을 시킨 결과 우승을 차지한 성복에게 쌀을 상으로 줬고, 또 장수들에게는 ‘씨름’하며 즐겁게 뛰놀게 했는데 이것은 나 스스로 즐거워지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수들의 수고를 덜어 주자는 생각에서였다’라는 기록이다. 이 내용은 ‘씨름’을 통해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병사에게 쌀을 상으로 줌으로써 군사의 사기를 높여주고, 장수들과 병사들이 오랜 전쟁의 시름을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려는 그의 뜻깊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제 이만기 인제대 교수의 스승 명장 황경수 감독이 제43대 대한씨름협회장에 당선된 만큼 황 회장은 위기에 처한 씨름을 위해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로서 씨름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대중적으로 전승돼온 씨름에서 ‘인간문화재’를 만들고자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씨름전수관’을 설립하는 데 힘써야 하고, 유소년과 생활체육 동호인이 증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또 씨름이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국제 스포츠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가맹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축제’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단적으로 씨름보다 늦게 단증제도를 도입한 복싱이 경찰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씨름협회가 행동 없이 말로만 위기라고 하며 얼마나 뒤처진 행정을 한 것인지 뒤돌아봐야 한다.

현재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씨름협회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씨름 진흥법’ 개정을 통한 법정법인 ‘국립씨름진흥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해가면서 국내외의 씨름 전승·보급은 물론 다양한 사업도 가능해진다. 또 장기적으로는 일본무도관(日本武道館)과 스모의 ‘양국국기관(技館)’처럼 씨름 전용 경기장 건립도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황경수 회장을 통해 보이길 기대해본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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