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네 //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동백아가씨’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가인(歌人)이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정부가 1973년 1월25일 상훈법을 개정하면서 ‘문화 및 체육의 진흥으로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를 위해 금·은·보·옥·화 5개 등급의 문화훈장을 추가한 이래 대중가수로서는 최고등급이다, 그동안 故 김정구씨(1980년), 故 백년설씨(2002년 추서), 조용필씨(2003년), 남진씨(2005년)가 보관문화훈장(3등급)을 받았으나 2등급인 은관문화훈장은 처음이다. 문화공보부 무궁화훈장(1967년), 화관문화훈장(1995년), 보관문화훈장(1999년)에 이어 은관문화훈장을 받음으로써 더 없는 영예를 안았다.
잘 알려진대로 이미자 가인은 여고 3년 때 KBS 전국 노래자랑 ‘노래의 꽃다발’에서 1등으로 입상, 가요계에 데뷔한 후 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의 ‘열아홉 순정’을 부르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 600여장의 음반과 2천100여곡의 노래를 취입했다. ‘기러기 아빠’ ‘황포 돛대’ ‘삼백리 한려수도’ ‘흑산도 아가씨’ ‘소양강 처녀’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등 히트곡만도 400곡이 넘는다. ‘수원 처녀’도 불렀다.
그러나 히트곡이 많고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국민 이름으로 훈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의 가요는 50년간 격변을 거듭한 대한민국 현대사와 애환을 함께 해왔고, 언제 어디서나 서민의 곁에 있었다. 국민들은 그의 노래를 통해 고단한 삶의 애환을 달래며 삶의 현장에서 희망과 의욕을 되살려 왔다.
그렇다. ‘이미자의 노래’는 1960년대 어려웠던 시기에 국민들과 애환을 함께 나눠 각별히 유정하다. 월남전과 개발경제시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서 위로를 받고 향수를 달랬다. 그리고 따라 불렀다. 남자들도 그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유의 애절하고 호소력 있는 음색에 우리 고유의 서정을 담은 수 많은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의 노래는 서민들의 반려였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 열아홉 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 서울에는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 이경재 작사, 박춘석 작곡 ‘섬마을 선생님’
수난기도 있었다.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왜색이라는 이유였다. 1987년 해금된 이후 그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져 트로트가 저학력과 가난의 상징이라는 고정관념을 털어냈다. 민족의 한과 기품을 담은 장르로 올려놓는 데 이바지했다. “대중가요는 ‘전통가요’”라는 그의 주장은 옳다. 누구든지 공감한다.
청와대에서 훈장 수여가 있은 후 이명박 대통령이 “50년을 노래해왔는데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해 몇 십년 더 노래를 부르기 바란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내달 2~4일 열리는)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에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동석한 김윤옥 여사는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가창력 덕분” 이라면서 “방송들도 젊은 층을 겨냥한 프로그램만 만들지 말고 역량 있는 원로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의 덕담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중인 ‘대중문화의 전당’과 ‘대중음악전문 공연장’ 설립의 기폭제가 되고 대중문화예술 재도약의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
“보기만 하여도 울렁 / 생각만 하여도 울렁 / 수줍은 열아홉살 움트는 / 첫사랑을 몰라 주세요” 올해 68세의 국민 여가수가 ‘열아홉 순정’을 간직한 ‘동백아가씨’로 ‘섬마을 선생님’을 연모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대중가요는 시대의 거울이다. 증언이다. 당대의 민심이다. 불멸의 선율로 남을 ‘이미자 노래인생 50년’에 경의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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