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질병으로 메마른 검은 땅…아이들 맑은 눈망울엔 ‘희망’ 빛나

<케냐 오지를 가다>

아프리카 하면 드넓은 초원부터 생각났다. 물소며 코끼리떼들의 이동, 기억속의 그 곳은 동물의 천국 내지는 동물의 왕국이었다.

아니 한 때 열광하던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읊조리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캐냐로 출발하기 일주일전에 가진 모임에서 접한 아프리카의 현실은 목마름과 굶주림의 현장으로 요약됐다.

출국일이 가까와 올수록 굳이 그 고통의 심장부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잠을 뒤척인 날이 적지 않다.

지난 달 24일부터 31일까지 월드비전 케냐 사업장이 있는 삼부르(Shamburu) 지역을 방문했다.

세계서 가장 용맹스럽다던 마사이족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혹독한 기후조건과 열악한 환경으로 세계 각지로부터의 구호로 연명해야 하는 가난의 땅이었다.

만성적인 가뭄은 농사도 가축을 기르는 일도 어렵게 했다. 그렇다고 좌절과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월드비전과 경기도교육청, 경기일보가 펼치는 ‘사랑의 빵 나누기’ 성금으로 새로 지어진 학교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맑은 눈망울엔 배움의 열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열망은 희망이라는 새싹으로 자라고 있었다.

늦은 밤 11시20분에 인천 공항 22번 게이트에 모였다. 일행은 한상호 월드비전 경기지부장을 비롯한 월드비전 관계자와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이훈, 권선우 부천교육장, 곽진영 동두천양주교육장, 김용국 김포교육장, 성기준 고양교육청 학무국장 등 모두 11명이다.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너스레를 떨어가며 주위를 웃음바다로 빠뜨리는 이훈씨의 매력에 빠져 들면서 어느새 일행은 동질감을 찾아갔다.

 

9시간 50분을 날아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섯시간을 기다려 나이로비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또 여섯시간을 날아 도착한 나이로비는 햇살은 따가워도 우리나라의 가을날씨 처럼 선선하면서도 상쾌했다.

 

월드비전이 지난 2002년부터 개발사업을 시작한 로로키 사업장은 삼부르 지역에 위치해 있다. 수도 나이로비로부터 북쪽으로 365㎞ 떨어진 곳이다. 한국에서 온 손님을 기다리는 원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일행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서둘렀다. 육로로 6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이었지만 경비행기를 이용해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삼부르지역의 경우 취학연령 아동 중 절반 정도만이 학교에 입학을 한다. 이는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부족으로 입학한 아동들의 80%는 중도에 중퇴를 한다. 평균 학업 기간은 2.5년으로 남자 아이보다 여자 아이들의 학업 중퇴율이 더 높다. 이는 땔감 마련이나 음식 준비 등 집안일을 거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 주민의 82%는 식수를 구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목 생활형 가옥 형태로 인해 주민의 90%가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가까운 보건 시설은 5㎞ 이상 떨어진 곳에 있다. 말라리아, 피부병, 안질, 에이즈, 회충 등의 질병에 자주 걸리지만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어 자연치유를 기대할 정도로 환경은 최악이다.

 

구호는 정부도 하고 유엔도 하고 월드비전 같은 민간단체도 한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이용하고 유엔이 각국 정부가 내는 분담금으로 구호활동을 한다면 민간단체는 일반 후원자의 후원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한푼 두푼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행은 개미군단의 푼돈을 모아 태산을 만들어가는 월드비전의 역할에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로로키지역은 월드비전과 결연을 맺은 학생 수가 현재 4천여명에 이른다. 후원자 1인이 매월 지원하는 3만원으로 이들에게 식량과 물, 교육의 기회 등을 제공하고 있다. 월드비전의 지원은 단순히 사냥한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월드비전 직원들은 결연 아동의 가정을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해 식량과 물, 그리고 교육자료 등을 전달하고 아동의 상태를 살핀다. 예방접종 등 위생 및 의료지원은 필수다.

 

물론 후원금 전액이 다 아동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일정 금액은 지역개발을 위해 쓰여진다. 이로인해 수혜자는 3만 여명에 달한다.

 

월드비전은 특히 교육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 전환에 주안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아동 및 여성이 교육을 받으려면 우선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유치원 건축 사업을 진행하고 책과 걸상 등을 지원해 교육환경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일행이 방문한 논토토초등학교는 8학급에 학생수가 600여명에 달한다. 학교로 향하는 길은 오랫동안 비를 맞지 못한 듯 황톳빛이었고 푸석한 먼지 바람에 창문을 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일행이 도착하자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벌어졌다. 자모회로 통역되는 단체들이 연이어 마사이족 고유의 전통춤으로 환영했다. 환영행사는 지리할 만큼 길게 이어졌다. 한국말이 영어로 번역되고 이어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로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 되풀이 되는 동안 강한 볕이라 뜨거울텐데도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 이국땅에서 찾아온 손님에 대한 경이로움과 반가움으로 연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논토토초등학교 학생들은 이미 의정부교육청의 지원으로 지어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기공날짜와 지원교육청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현판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리고 경기도내 어린이들의 성금으로 40여명의 여학생이 숙식 할 수 있는 기숙사와 식당도 완공돼 이날 현판식을 진행했다.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방문단은 논토토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축구골대를 세워줬다. 그리고 준비해간 축구공과 유니폼을 전달하고 양팀 7명씩의 선수를 뽑아 승부차기를 했다. 팽팽하던 승부는 탤런트 이훈이 찬 공이 골대 위로 벗어나면서 논토토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튿 날에는 비포장길을 달려 한국 후원자와 결연한 아동을 만나러 갔다. 나무로 얼기설기 뼈대를 맞추고 가축의 배설물인지 흙인지 모를 것들로 벽을 바른 마사이족 전통 가옥 200여 채에 주민 1천여명이 살고 있다. 전체 공간이 15㎡도 채 안돼 보이는 집안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캄캄했다. 집안에는 병아리들도 있었다. 사람과 가축이 함께 자고 먹고 하는 생활은 그들이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나마 결연 가족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적어도 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미래을 꿈꿀 수 있으니 말이다. 인근에 있는 로바티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결연아동은 눈으로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모두들 운동화에 초록색 교복 윗도리를 입고 있다.

 

우물이 생기기 전, 마을 주민들은 1㎞ 정도 떨어진 곳에 자연발생한 저수지의 물을 이용했다. 사육하는 가축들까지도 그 물을 먹었다. 빨래도 그 곳서 했다. 그나마도 가뭄이 들면 저수지의 물이 말라 10㎞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온 식구들이 물을 나르는 데 하루를 소비해야 하니 학교를 다닌 다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월드비전은 이 곳에 우물을 팠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우물 사업장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4천여명의 식수를 해결하고 있다. 주민들이 더 이상 저수지 물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수량은 풍부하다고 한다.

 

지난 2007년부터 월드비전 홍보대사로 활동해 온 탤런트 이훈씨(38)는 어느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도 늘 웃는 얼굴이다. 숙소에서 따뜻한 물은 커녕 흙이 섞여 나오는 물에 세수를 하면서도 씻을 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 2006년 정애리, 조민기씨와 함께 다녀 온 우간다에 비하면 형편이 낫다는 것. 맨발에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모를 얼굴을 한 아이들을 보면서도 이씨는 연신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지 않냐”고 했다.

 

 

아이들은 정말 예뻤다. 우물쭈물 수줍어만 하다가 마침내 지어 보이는 환한 미소. 그 아름다운 미소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미소를 계속 지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박정임기자 bakha@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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