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확 풀리네~
뭐 좀 냉한 음식이 없을까 하던 차에 동행 사진작가가 권한 곳이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 옆의 제법 오래된 묵밥집이었다. 하지만 주인이 한사코 면담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글로 쓰이고 하는 따위의 일이 번거롭다는 것이었다.
낭패. 동행중이던 강화문화원 사무국장이 여기저기 알아봐 연락이 닿은 집이 새우젓국갈비로 소문이 났다는 집 ‘1억조 갈비’였다. 냉한 음식을 찾아갔다가 거꾸로 더운 음식을 만나게 된 꼴이었다.
여름에 무슨 열 많은 돼지고기람?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나 돼지고기를 다스리는 새우젓이 있으니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은 당치 않다. 차를 세우고 걸어 새우젓국갈비집이 있다는 골목길 입구로 들어서다가 아니, 이 길은? 하고 놀랐다. 반갑기도 했다. 동문안길 21번길. 길 이름은 이렇게 붙었지만 틀림없는 용흥궁(龍興宮) 길이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문인 몇과 함께 ‘강화도령’으로 불리는 조선 25대 왕 철종(哲宗)의 잠저(潛邸)인 이 용흥궁을 답사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억조 갈비’는 그 골목 안쪽으로 5,60미터쯤 들어온 곳, 용흥궁 조금 못미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억조’가 관청리 468번지, 용흥궁이 441번지. 답사 때 이 길을 들어서면서는 전혀 관심 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아니면 혹 보았다 해도 기억에 둘 일이 없는 것이다.
소박하고 소탈한 맛, 입안에 구수하게 퍼져
여주인 임경자씨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이내 자칭 ‘어머니 손맛의 젓국갈비 원조’라는 이 집 간판 음식 젓국갈비냄비가 나와 불 위에 얹힌다. 근자에는 새우젓국갈비가 각지에 퍼져 웬만하면 다 이 맛을 보았을 테지만, 25년째 돼지고기와 갈비를 다루어 온 ‘일억조’의 젓국갈비 맛은 남다른 데가 있다.
우선은 주인공인 새우젓국과 돼지갈비가 참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이다. 국물은 들뜬 듯한 단맛 대신에 다소 덤덤하고 엷은 염기가 느껴지는 정도였다. 언뜻 소박, 소탈하다고 할까. 그러나 그렇게 몇 숟가락을 넘기고 나면 비로소 깊고 구수한 맛이 입 안에 퍼진다. 다른 화학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흠씬 무른 돼지 갈빗살은 입 안에서 흡족하게 녹는다. 국 속에 든 홍고추, 청량고추, 호박, 감자, 파, 두부의 색감도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다.
“저는요. 우리 고향 강화의 토속음식인 이 새우젓국갈비를 본래 그 맛 그대로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 메뉴를 저희 집 간판 음식으로 정한 거구요.”
원래 새우젓국돼지갈비는 고려 왕실이 몽고군을 피해 천도했을 때 왕에게 진상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강화 특산인 새우젓과 연관시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팔백 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이 음식을 최근 강화군이 지역의 토속 음식으로 내세워 널리 대중화시키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여름엔 ‘이열치열’, 더운음식이 더 시원
“1990년이 될 무렵 친정어머니께서 내가 이제 나이가 먹어 못 하겠으니 네가 한번 해보련?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한다고 했죠. 남편은 직장에 다녔지만요.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인데, 내 성격 그대로 긍정적으로 이 일을 해 왔어요. ‘일터는 꿈터’ 이것이 내 생활 목표면서 이상이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올려다봐요. 그리고 오늘도 행복하자. 이렇게 다짐해요. 마음이 천국 아닌가요? 음식을 만들면서도 이 밥을 잡숫는 분, 오늘도 좋은 일 많이 있으세요. 이렇게 기원하고요.”
임씨의 아름다운 마음이다. 금실 좋은 남편은 직장을 접고 함께 가게를 운영했는데 얼마 전 조기 축구팀에서 운동을 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쳤다고 한다. 그래 요즘은 군에서 제대한 아들이 아버지 대신 10여 군데 단골들 식사 배달 차를 운전해 준다고 한다. 이참에 아들이 식당 일을 배워 대 물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집 일이다.
이열치열. 한여름에는 오히려 이렇게 더운 음식이 오히려 더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착한 식당’을 나와 다시 인천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글 _ 김윤식 시인 사진 _ 홍승훈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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