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CLOSE UP _ 화제의 당선인] 제종길 안산시장 당선인ㆍ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교훈, 사람 중심 특별시 구현

제종길 제6대 안산시장 당선인은 당선 소감을 통해 “사람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람중심 안산특별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사람의 가치에 중심을 두는 데는 많은 희생자로 인해 우리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세월호 사고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제 당선인은 “세월호 사태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람중심의 특별시를 만들어 나가는데 주력하겠다”며 “진상규명을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및 추모하고 그 가족과 이웃을 위안하며 사람과 생명의 가치를 중시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젠 안산이 고향’임을 강조하고 있다. 절반의 고향이었던 안산을 우리 모두는 고향처럼 여기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주문하면서 아름답고 편안한 도시 내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본다는 제 당선인은 시민 모두가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안산’, ‘하나 되는 안산’을 꿈꾼다고 밝혔다.

부패 고리 차단… 청렴하고 공정한 시정

성장과 물질만능의 패러다임은 결국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만들어 냈고 사람의 안전보다는 물질의 이득을 더 크게 생각하는 의식을 심어 놓았다며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 당선인이 강조한 또 다른 화두는 부패의 고리를 끊고 청렴하고 공정한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시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부정부패와 청탁금지 조례를 제정하고 시청 담장을 허물어 열린 광장을 조성하고 의사 결정 초기 단계부터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등 공개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환경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국제적인 생태 관광도시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며, 문화·예술·체육 예산을 4%대로 늘리고 숲과 하천이 어우러지는 자연형 도시를 가꾸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특히 대부도를 재설계해 수도권 최고의 체험관광지로 만들어 보물섬으로 만들 생각과 세계적으로 강한 중소기업들이 탄생하도록 산업단지를 적극 지원해 안산을 젊은이들과 근로자들에게 기회의 산업도시로 재생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유년기 미술반 활동하며 예술가 꿈꾼 ‘생물학도’

제종길 당선인은 지난 1955년, 경상남도 마산의 작은 바닷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자연과 벗하며 비교적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9살 당시에 부친께서 군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온 가족이 함께 서울 영등포로 삶의 둥지를 옮겨야 했으며 이후 장성할 때까지 한 번도 우리  집을 가져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영등포에 소재한 우신초와 영등포 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유머가 풍부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많은 친구들과 사귀게 되면서 사람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됐을 뿐 아니라 활발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이였던 것으로 그 시설을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미술반으로 활동을 하며 예술가를 꿈을 꾸기도 했다. 그것은 당시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잘 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고등학교 땐 친구들과 어울려 록과 포크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대학입시에 좌절의 쓴 맛을 보고 삼수 만에 건국대 생물학과에 입학을 하면서 환경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으나 공교롭게도 당시가 집안형편이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한 학기만을 마치고 군에 입대,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

공군에 복무하면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전역 후 바로 스킨스쿠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스킨스쿠버가 고급 스포츠라서 강습비를 마련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말하는 그는 어머니에게 “학원에 다녀야 한다”며 하얀 거짓말을 하고 받은 돈으로 스킨스쿠버를 배웠다고.

고생하신 어머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 당시 배워 둔 스킨스쿠버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꿈이 많았던 그는 복학을 해서도 공부만 하던 학생은 아니었고 생물학과 학회장을 맡아 학과를 이끌고 문리과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사회문제와 민주화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앞장섰던 ‘청년 시절’

대학생시절 한국과학기술원 해양연구소에서 방학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로 연구보조원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그것을 인연으로 대학을 졸업 한 뒤 해양연구소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나름 성실성을 인정받아 그렇게 어렵다던 연구소 입사시험에 지난 1996년 합격, 정식 연구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종길의 운명이였을까?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우연한 계기로 1년간 노조지부장을 맡았다. 연구소 내 약자의 입장과 열악한 처우의 비정규직 문제를 알게 되었고 지부장을 맡는 동안 사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해양연구원의 연구원이던 당시 시화호를 살리기 위한 환경운동 및 시민운동과 만나게 됐고 주로 자문과 과학적인 조언을 해주는 입장이었다. 후에 환경운동연합과 경실련 등 단체의 회원이 되어 시민운동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배움에 대한 열망도 끝이 없었다. 힘든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도 93년에 서울대 해양학과 박사를 졸업하고 이어 96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호주 Deakin 대학교 박사후 과정도 마쳐 학문의 길을 성실하게 이어갔다.

2004년에는 17대 국회의원에 당선 됐으며 국회의원 이전부터 안산의 시화호와 전북 새만금의 중요성 및 생태학적 가치를 지키는 지킴이의 역할을 해왔을 뿐 아니라 정부와 지역의 갈등 문제, 개발로 인한 지역공동체 해체 반대를 주장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접 접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의 덕으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추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당선 될 수 있었다.

4년간 한노위 간사 활동… 장차법 등 사회현안 해결에 주도적 역할

국회의원 시절에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4년간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며 친환경 생태환경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고 국회본회의 100%출석!(총 5명) 법안가결건수 탑(TOP) 10안에 선정되는 하면 3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 대한민국 환경대상(정치부문)에 선정 되는 등 의정활동을 알차게 했다고 분석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기초노령연금법, 사회적기업지원법과 시화호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악취방지법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해 지금의 시화호 악취 문제를 해결 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원칙과 신념으로 살아온 인생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2008년 충선에서 낙선한 후 도시연구를 위해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설립해 도시운영과 자연생태계 관리와 조성, 생태관광 등을 연구하며 지역의 환경문제와 사회적 갈등 그리고 기후변화 연구·방안마련에 힘써 왔다.

한국생태관광협회 공동대표에 이어 한국환경교육 네트워크(전) 공동대표, 황해대생태계 국가조정관, 해양수산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 기후변화 행동연구소 고문, 국회 기후변화포럼 기후변화정책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함께 화성시 자연사박물관추진위 부위원장, 수원시 기후변화위원회 부위원장 및 기후변화교육체험관 자문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좋은 도시를 만드는데 기여할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서민이 살고 싶은 도시’, ’창의적 문화도시’를 위한 연구와 노력에 주력해 안산 시민들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안전한 안산시를 만들기 위해 안산시장에 출마, 시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글 _ 구재원 기자 kjwoon@kyeonggi.com

사진 _ 안산시장 당선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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