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이뤄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반목과 대결의 반세기를 지나 화해와 교류, 협력을 통해 평화와 공존이 본격화 되고 있다.
이에따라 남과 북이 우리 현대사 최대비극인 6·25 한국전쟁 발발 50년동안 원시림을 보존한 비무장 지대를 지나는 경의선 복원철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본보는 남북화해 무드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잇는 각종 사업이 예상된 가운데 ·고성군 고진동 계곡과 대암산 용늪지역 동·식물 생태계 현장탐방, 비무장지대의 바람직한 보존상태를 살펴본다./편집자 주
지난 11일 오후 5시20분께 어둠이 깔린 고성군 고진동 계곡 맞은편 초소.
내무반에서 20여m 아래 떨어진 곳에는 잔반통이 놓여있다.
저녁식사를 마친 초병이 잔반(殘飯)을 내놓은지 10분도 채 안돼 숲속에서 “꾸욱∼ 꾸욱∼”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공은 130㎝정도의 짙은 회색털에 갈색 무늬가 있는 멧돼지.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무가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뒤 경계를 풀고 식사를 한다.
이어 어미돼지와 새끼돼지 2마리가 합류, 고기국과 김치 등으로 포식을 했다.
군사분계선과 바로 붙어있는 강원도 고성군 고진동 계곡은 야생 동물과 군 초병들이 함께 살아간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217호이자 살아있는 자연의 화석이라 불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산양도 50여마리나 살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으로 흐르는 남강지류인 고진동 계곡물에는 1급수에서만 서식한다는 토종어류 버들개가 떼지어 노닌다.
육군뇌종부대 정모대위는 “병사들에게 야생동물 보호교육을 하고 매년 4월에는 연어치어를 방류해 북으로 보내고 있다”며 “지금은 계곡수문이 닫혀있지만 통일이 돼는 날 성어로 자란 연어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1시간여 떨어진 양구군 대암산 용늪.
민통선 출입초소인 팔랑 검문소에서 차량으로 가파른 돌산령 고개를 20여분 오르다 다시 비포장 군사도로를 따라 40여분정도 달리면 산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깍아지른 낭떠러지 산길. 군용지프로 곡예하듯 운전해야 간신히 오를 수 있는 난코스이다.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불리는 용늪은 길이 275m, 폭 210m의 타원형.
행정구역상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서화면, 양구군 동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1천314m 높이의 대암산 자락에 완만하게 발달한 경사면에 1.3㎢(약 4만3천평)로 신비감을 품은채 고요히 자리잡고 있다.
용이 승천 했다는 전설이 있는 대암산 용늪은 이틀에 한번꼴로 끼는 안개와 세찬바람, 연평균 4도 안팎의 차가운 기온분포를 보인다.
용늪은 빗물이 고인 분지에 물이끼와 같은 습지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짧은 여름동안 자생한뒤 추운 겨울철 얼기를 반복, 산 정상의 낮은 기온때문에 채 썩지도 않고 그대로 퇴적된 이탄층(peat)으로 조성됐다.
이탄층에서 나오는 유기산은 토양을 강한 산성으로 만들고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4천∼5천년동안 180㎝의 높이로 겹겹이 쌓여 형성된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뿐인 고층습원이다.
이 이탄층은 강우나 안개의 결로로 인해 형성된 물들을 천천히 머금고 있다가 갈수기에는 서서히 증발되게 하기에 용늪이 습지로 유지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에따라 용늪의 가치는 단순히 늪지로서만이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희귀성을 인정받아 지난 97년 세계에서 101번째로 습지보전을 위한 람사협약에 가입했다.
용늪에는 올록 볼록한 사초기둥이 많다.
처녀치마, 한국특산물인 홀아비 바람꽃, 금강애기나리, 현호색, 물이끼(환경부지정 보호식물), 식충식물인 끈끈이 주걱, 북통발, 금강초롱꽃, 금강달맞이 꽃, 날개 하늘나리, 비로용담, 제비 동자꽃, 기생꽃, 참배암차즈기, 조름나물, 애기 기린초, 큰별꽃제아비, 개느삼, 고려 엉겅퀴 등 희귀식물을 포함 191종의 각종 식물들이 폭넓게 자생하고있다.
또 용늪 주변에서 살고 있는 동물에는 멧돼지, 고나리, 노루, 고슴도치 등과 도룡뇽, 달팽이, 가재, 개구리 등의 양서·갑각류와 복숭아순나방붙이 등 234종의 곤충이 서식하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 보고(寶庫) 용늪이 상당부분 파괴됐다.
4만3천여평에 달하던 용늪규모는 육화(陸化)로 인해 2만3천여평만이 원시상태를 간직한채 가는 오이풀과 산사초가 늪 주변에 서식하고 철쭉과 박새, 사철나무 등 육식식물이 늪 가장자리 부터 서서히 침투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난 70년대 주둔 군부대가 부대원의 체력단련을 위해 용늪을 스케이트 링크로 만들기 위해 늪의 표토를 걷어내 둑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하수위의 변동을 일으켜 늪의 생태를 교란 시킨것으로 환경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여기에 인근 부대 막사·운동장·도로 등에서 유입된 미세 토사 입자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늪의 이탄층 구조를 막아 강우시 빠른 유속의 물길을 조성, 늪지내 토사인입을 가속화시켰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에따라 환경부는 지난해 8월부터 3년동안 용늪에 관한 출입금지 조처를 한뒤 용늪에 대한 장기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H건설 용늪보존공사 박성희(이학박사·38) 팀장은 “늪의 식생복원을 위해 인위적인 행위를 가하지 않는 것이 복원공사 원칙”이라며 “둑막이를 설치해 늪지내 수위를 조절하는 등 원상태을 갖추기위해 공사를 신중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155마일 907㎢의 비무장지대는 역사의 아픔을 갖고 있지만 146종 2천8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다.
환경운동단체는 “이러한 생태계 보고에 환경 평가도 없이 경의선 철도를 건설 할 수 있냐”고 반문한 뒤 “비무장 지대는 앞으로 통일열풍을 타고 이뤄질 남북간 연결도로공사로 인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김성교수는 “이제 비무장지대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유엔이 인정하는 ‘세계자연생태계보전’으로 지정받아 환경, 역사, 문화, 안보의 교육장으로 활용해 생태관광을 통해 특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학기자 chkim@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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