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갑지만은 않은 동전들의 귀환

박정임 경제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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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날 주말 오후로 기억된다. 난데없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승복을 입은 여성 두 명이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복 많아 보이는 인상’이라며 칭찬 일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이들 임에도 ‘물 한잔 달라’는 말에 집안으로까지 들인 데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좋은 기운이 느껴져 중간에 내렸다’는 말 한마디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거기에 ‘자식 복도 있다’는 덕담은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마저 느끼게 했다.

강원도의 한 사찰에서 수양 중이라고 소개한 그들은 집안을 훑어보더니 난데없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이 집엔 동전을 모으면 동전만큼 걱정이 늘어난다’며 ‘동전을 모으지 마라’는 거였다. 그리곤, 집안의 근심을 털어주겠다며 기도비를 요구했다. 기도비는 오만 원이었다.

꽉 채우면 푸른색 지폐 수십 장을 만질 수 있기에 그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동전만 눈에 띄면 저금통에 집어넣곤 했는데, 여간 찜찜한 게 아니었다.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 방이 붙었다. ‘낯선 여성들이 방문해 기도비를 요청하는 사례가 있으니 주의하라’ 라는 내용이었다.

기부금 영수증을 보내준다며 주소를 적어갔는데, 영수증은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날 이후로 동전을 애써 모으지 않는다. 한 푼 두 푼 모인 동전이 요긴하게 쓰이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꼭 어린 시절이 아니어도 동전을 모은 저금통이 주는 희열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다. 내 경우만 해도 초등학교 입학식 때 멘 가방부터 학년이 바뀔 때마다 입었던 새 옷은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빨간 돼지 저금통을 깨 샀던 것 같다.

한국은행이 집안에서 잠자는 동전 탓에 골머리를 앓는 이유다. 10원짜리 동전의 발행비용이 38원이라니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동전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발행된 동전이 시중에서 쓰이다가 한국은행으로 다시 돌아오는 비율을 ‘동전 환수율’이라고 하는데, 이 비율이 국제 금융위기의 여파가 컸던 지난 2009년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게 아니다.

경기가 나쁘다 보니 저금통이나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는 동전에까지 털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동전 환수율로 현 경기 상황을 판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려운 서민 경제를 반영하는 것임엔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지난해 4분기 말 가계부채는 1천89조 원에 달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8천600만 원의 빚을 진 셈이다. 빚이 계속해서 느는 것도 문제지만 집을 사겠다며 대출을 받은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집은 사지 않고 생활비나 자영업 사업자금 등으로 돈을 쓰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생계형 대출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은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2.0%에서 1.75%로 떨어뜨렸다. 사상 첫 기준금리 1%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한은은 경제 전반과 내수 회복세가 애초 전망치를 밑돌면서 경기 부양 추진력을 살리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금리 인하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고는 하지만 소득은 늘어나지 않았는데 금리는 내렸으니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금리 인하와 더불어 가계부채 급증 등 위험 요인에 대한 대책도 함께 나왔어야 했다. 동전의 귀환을 기뻐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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