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경기>기초단체장 임명직 전환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자는 격이다’-지방자치단체장. ‘흰개미를 방치하면 초가삼간이 무너진다’-일부 국회의원.

일부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전횡으로 지방자치의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며 기초자치단체장을 임명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법개정 추진에 나서자 기초자치단체장이 정면 대응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같은 기초자치단체장 임명직 전환에 대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찬반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방자치 재출범 10년을 맞은 올해, 중간적 평가 성격이 짙은 이같은 논쟁에 대해 조명해 본다.

1.논쟁의 불씨

민주당 김덕배(고양 일산을), 한나라당 임인배(경북 김천)의원 등 여야의원 42명은 지난달 29일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을 선출제에서 임명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의원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각종 지역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이에 편승한 선심, 전시행정이 남발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지방자치를 구현하기 위한 취지에서 법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전 유성에서 지방자치발전 세미나를 열고 있던 시장·군수·구청장 등 전국 기초자치단체장협의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라며 ‘개악적 지방자치법안 저지 결의안’을 채택한데 이어 시·도회장단 20여명은 국회를 항의방문했다.

이만섭 국회의장 및 여야 3당 지도부와 면담을 갖은 이들은 지방자치법개정안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전국민서명운동과 함께 현직사퇴 등 모든 투쟁방법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맞섰다.

이들은 4일 서울 공덕동 협의회 사무실에서 비상특별대책회의를 갖고 언론사 등 전방위적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지방자치 수호 발전을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이날 3당 대표를 방문, 강력 항의한데 이어 국무총리 면담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2.왜 이런 논쟁이 불거졌나

◇발의 국회의원들의 논거

여야의원들이 지방자치제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들고 나선 것은 지난달 13일 대정부 질의에서다.

이날 의원들은 선출직 단체장의 선심성 예산집행, 전시성 행사개최 등 방만한 지자체 경영을 질타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한 목소리로 주문하고 나서 법안 개정을 시사했다.

이번 지자법 개정안의 대표 발의자인 임인배 의원은 ▲빚더미에도 아랑곳 않는 경쟁적 축제행사 개최 ▲75%나 증가된 자치단체 채권발행과 연간 1조원 이상의 이자부담 ▲재정증대를 위한 건축허가 남발 ▲내사람 챙기기식 인사 ▲제왕적 자세 등을 예로들며 “기초자치단체장을 임명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또 민주당 원유철 의원(평택갑)도 “방만한 재정운영과 무소불위의 인사전횡, 선심성 행사유치, 국가사업 비협조 등 일부 자치단체장의 독선에 의한 폐탄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며 “‘주민자치’가 아니라 ‘자치독재’”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문석호 의원(충남 서산·태안)도 “대통령까지도 불법비리가 있으면 탄핵, 제명 등에 따라 그 직을 사임토록 되어 잇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장에 대해서는 제명 등의 조치를 취할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어 단체장의 독선적 행정을 보고만 있는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지자법 개정 발의자중 한명인 김덕배 의원도 “지방자치제도가 이상적인 제도로 출발했지만 시행착오들이 개선되기 보다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며 “특히 비전문 정치인사로 인해 행정조직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공무원들의 사기가 꺾이고 있고 민산단체장제를 유지하는데 엄청난 예산만 소모하고 잇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도 기초단체장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무소불위 권력을 지역 토호세력들과 연계해 행사하고 있다”며 “기초단체장부터 시닥해 행정개혁 대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자치단체장 협의회의 논거

협의회는 지난 95년 풀뿌리 민주주의 토대를 마련하자고 출발한지 5년, 제도미비와 일부 단체장의 과실 등을 빌미로 중앙집권으로 회귀하려는 행태는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협의회는 “시행착오는 있게 마련이다. 시행착오속에는 진리가 숨겨져 있다. 그 진리는 다음의 시행착오를 치유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전제한 뒤 “현재의 지방자치제에 문제가 있다면 부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는 것이 타당하지 전면 개편, 그것도 중앙집권으로 회귀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지방자치가 실시돼 주민위주의 행정이 정착돼 가고 있고 전국 232개 지자체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주민들의 복지혜택을 위한 행정정보 교환, 우수사례 도입 등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협의회는 기초자치단체장을 임명직으로 전환할 경우 보장된 자리에서 임기만 채우거나 인사권자의 임명에 따라 단기간내에 자리를 옮겨 행정의 연속성이 결여되고 공무원의 복지부동 등의 폐해도 나올 수 있으며 주민을 위한 행정보다는 임명권자를 위한 행정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폐단이 더욱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국회의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나 자치단체장을 직접 뽑는 것이나 동일한 것”이라며 “만약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긴다면 국회의원을 임명제로 전환할 것이냐”고 역설했다.

3.시민단체와 공무원의 찬반논쟁

시민단체와 공무원, 주민들 사이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임명직 전환에 대한 찬반이 분분하다.

시민단체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반대다. 그러나 이같은 의견을 겉으로 표명할 경우 자칫 단체장을 감싸는 것이 아니냐는 또 다른 시각으로 비춰질까봐 대응방안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법안이 제출되기까지 단체장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고 견제하는 수단을 강구하기 보다는 중앙집권적으로 가겠다는 발상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방자치 확대에 역행하는 이같은 법안이 제출된 내면적 이유로는 단체장과 국회의원간의 갈등도 포진돼 있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시각이다.

따라서 주민참여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지 단체장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광역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임명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광역시와 도 단위의 지방자치는 한번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지방자치가 생활권을 위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행정구역 단위로 실시됐기 때문에 중복투자, 행정절차의 복잡성 등 폐단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생활권이 동일한 광역시의 구청장제도는 폐지하되 권역별로 단체장을 선출한다든가, 지방의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대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도 단위의 경우 현재 체계대로 지방자치를 실시하되 행정구역단위가 아닌 생활권 단위로 지방자치경계를 재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경실련도협의회의 박완기 국장은 “문제가 있다고 이를 원점으로 되돌리기 보다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주민참여제도의 확대, 주민조례청구제,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등이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의 경우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임명제에 찬성하는 부류는 한마디로 “기초자치단체장의 지방자치 도입이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

이들은 광역자치단체부터 지방자치를 도입한 뒤 주민들의 지방자치 의식이 성숙된 뒤 기초자치단체까지 확대했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하는 주요골자다.

지방의회가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는 기능이 미약하고 오히려 단체장의 편을 들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등의 행태는 주민들의 지방자치 의식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 이들 학계의 주장이다.

반면 지방자치단체장의 임명직을 반대하는 학계에서는 “현재의 지방자치가 잘못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일부분”이라며 “빈대가 두렵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지자제의 시행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이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역사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찬반논란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찬성여론이 드높아 반대를 주장하는 공무원들의 의견이 억눌리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공무원직장협의회 자유게시판에는 ‘이래서 기초단체장 임명제 해야 한다’, ‘나라님들께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등등의 제목으로 단체장의 폐단을 열거하며 임명직으로 전환에 찬성하는 글이 수없이 게재되고 있다.

이들은 단체장들이 지역경제 발전은 외면한채 선거만 의식해 불요불급한 선심성, 전시성 사업을 남발하고 있고 돈되는 일이면 러브호텔, 난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사권 전횡, 차기 선거 준비에 따른 행정공백 등으로 지자체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4.법 처리 전망

여야의원들의 지방자치법 개정안 상정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의 무소불위 권한과 제왕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위한 경고성 법안 제출이란 해석이다.

이 때문에 법안에 동의한 의원들까지 법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현재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된 상태.

조만간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상임위를 통과한다고 해도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거나 수정발의를 통해 단체장들의 무소불위 행정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그 장치로는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지방의회의 권한강화 등이 꼽히고 있다.

주민자치란 목적에 맡게 단체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행정이 아니라 지방의회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민주적으로 처리하는 행정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 견제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초자치단체장들이 현직사퇴, 국민서명운동 등 집단·극단적인 방법으로 반발할 경우 법안이 통과될 수도 있다는 게 국회 보좌진들의 분석이다.

한 보좌관은 “이번 지자법 개정안 제출은 단체장들의 독선적 행정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경고성 법안제출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그러나 이같은 경고를 무시할 경우 의원들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는 게 의원들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유재명기자 jmyo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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