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그리고 1년… 안전불감 여전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깊고 넓게 뿌리박힌 안전불감증으로 앞길 창창한 고교생 수백명이 희생되며 전 국민을 오열케 했던 ‘세월호 참사’가 지난 4월 16일로 1주기를 맞았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 가장 강력한 화두는 ‘안전’이었다. 이에 응답하듯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앞다퉈 안전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재난은 여전하다. 뒤로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판교 환풍구사고, 영종대교 연쇄추돌사고 등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된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그때마다 관계 기관의 땜질식 처방도 잇달았다. 참사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에 포토경기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악순환의 고리를 끓고 안전강국으로 나아가는 대안을 모색해 봤다.
반복되는 ‘안전한 대한민국’… 허울 뿐인 안전대책
지난해 4월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자 정부는 물론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각 시·군 등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19일 국가재난을 전담하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각종 재난 시 지휘체계를 일원화함으로써 신속하게 대처하겠다고 자신했다.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등 각 기관도 현장중심의 재난·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인천시도 안전문화 운동 확산 및 협업체계를 강화하고 현장중심의 안전취약시설 안전점검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1년간 경인지역을 비롯한 전국 곳곳은 각종 대형사고로 얼룩졌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고가 안전수칙 미준수와 부실시공 등 안전불감증에 의한 후진국형 인재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막대한 행·재정적 노력이 공염불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한 달 후인 지난해 5월26일 고양종합버스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고 11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같은해 10월17일에는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공연 중 환풍구가 추락, 1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올해 2월11일에는 인천 영종대교에서 106중 연쇄 추돌사고로 2명이 목숨을 잃고 130명이 부상을 입었고 3월22일과 25일에는 각각 인천 강화 캠핑장 화재와 용인 교량공사 붕괴로 6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하는 등 그야말로 사고정국이었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후진국형 대형사고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유에는 우리 사회 깊숙히 자리한 안전불감증이 존재한다”면서 “현실적인 제도정비와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는 여전히 ‘부재’ 中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의 역할론이 대두됐지만 여전히 경기도와 각 시·군, 기관별 컨트롤타워는 ‘부재’ 중이다. 전문인력이 배치되고 재난안전을 컨트롤하는 권한이 주어져야 하지만, 사람과 권한은 그대로인 채 ‘명칭’만 변경된 꼴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안전 도지사’를 표방한 남경필 경기지사에 의해 지난해 8월7일 제1차 재난안전총괄조정회의를 갖고 재난안전대응시스템을 현장 중심으로 개편했다. 재난안전국을 신설하는 등 전문성을 강화해 각종 재난에 대비하겠다는 목표였다.
도내 31개 시·군 역시 안전총괄과라는 명칭의 부서를 신설해 재난 발생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 역시 지난해 11월19일 1장관, 1차관, 2본부, 4실, 19국, 62과에 12개 소속기관을 둔 거대조직(소속인원 1만39명) 국가안전처를 신설했다.
이 모두가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에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방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안전이 생활화된 국민 △안전이 체질화된 사회 △안전이 우선시 되는 정책을 목표로, 재난안전 컨트롤을 강화하고 현장대응 능력강화, 안전 문화 생활화, 안전 인프라 확충을 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난 사고 발생시 이를 컨트롤하고 지휘해야 하는 이들 조직은 정작 사고 발생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경험도 없거니와 전문성도 부족하기 때문에 사고 이후 관련 대책을 취합해 발표하는 수준에 멈춰있는 것이다.
지자체 재난안전관리 전문성 절실… 권한·책임 강화 시급
경기도에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도재난안전본부는 도의 각 실·국과 소방직과 행정직의 인사교류만 했을뿐, 여전히 제 역할을 하기에는 권한이 부족하다.
현장에서 구조와 구급 등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예방이나 지휘 등의 역할은 행정직이 대부분인 도 재난안전국이 쥐고 있다. 또 여러 기관이 연결된 대형사고의 경우에는 컨트롤타워 자체가 자연스레 상위부처, 상위직급으로 옮겨가는 현상도 벌어진다.
수원시 등 일선 시·군도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안전총괄과가 신설됐으나 행정직 직원이 순환인사를 하는 등 전문성은커녕, 현장경험도 짧은 상태서 사고 이후 타 부서의 안전대책만을 취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토록 강조했던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설치는 1년여동안 제자리 수준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조직은 계속되는 대형사고에 ‘사후약방문’식 대처방안만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차명호 평택대 교수는 “재난안전의 주축은 지자체가 맡아야 하는데, 그정도 역량을 갖춘 인력이나 부서가 없는 상태라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지자체의 재난안전관리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직만 흔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전문가를 배치·양성하고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안영국·송우일기자
사진=김시범·전형민·추상철기자·연합뉴스
[인터뷰]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재난 근본적인 예방 위한 통합 거버넌스 구축 필요
“재난안전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 그리고 기업 등 사회전반에 걸쳐 위기관리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재은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50·전 국가위기관리학회장)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안전불감증을 해소하고 보다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통용될 수 있는 안전정책, 위기관리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NSC 자문위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국가위기관리실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재난안전 분야의 전문가로 정평 나 있다.
이 교수는 “현재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의 역할은 사고 이후 수습책에 국한돼 있다”면서 “정부나 지자체 모두 가시적인 재난안전 대응책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고 수습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방책”이라면서 “사회 전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내장형 위기관리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안전불감증을 국민 인식이나 문화 탓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며 “국민 인식을 바꿔야 하는 책임 주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인 만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나 사회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송우일기자 사진=충북대 제공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