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된 제철소는 ‘관광명소’ 화려한 부활

[도시재생, 경기도형 묘수를 찾다] 3. 공간을 주목하라Ⅱ :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 공원 내 철강 제철 시설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채 각종놀이시설 및 공연장 등이 갖춰진 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독일 루르지역의 도시 뒤스부르크는 세계대전후 폐허가 된 독일을 기적처럼 회생시켰다. 독일 최대의 철강기업인 티젠 그룹의 주력 제철소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굴뚝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1985년 마지막 제철 작업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IBA 엠셔파크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까지, 10년 이상 방치된 채 대규모 철강 제철 시설은 시간의 더께를 이기지 못하고 녹슬었다.

 

■ 근대 유산으로 도시의 정체성 확보

뒤스부르크는 철강업과 제철업을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노동자 도시였다. 산업 구조의 변화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도시였다.

실제로 뒤스부르크의 (사회보장의무가 있는)노동자 수는 1976년 22만5천명에서 2002년 15만9천명으로 크게 줄었다. 거주자를 포함한 전체 인구도 1975년과 2002년 사이에 10만 명 이상 감소했다.

생존을 위한 도시재생에 주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섰다. IBA 엠셔파크 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란드샤프파크 뒤스부르크 노르트’가 그 결과물이다.

‘란드샤프파크 뒤스부르크 노르트’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쉽게 말해, 뒤스부르크 북부의 메이데리히와 함본 지역 사이에 자리잡은 티센 그룹의 공장 부지와 관련 시설을 보존하면서 환경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뒤스부르크시는 티젠 그룹이 떠난 텅 빈 공장 부지를 1985년 매입, 활용 용도를 고민했다. 당시 루르지역의 모든 지자체에 주어진 공통 과제였다.

“과거 독일의 ‘돈주머니’ 역할을 했던 루르지역의 지자체들이 기업이 떠나면서 노동자와 거주자를 잃으며 고민했다. 뒤스부르크 역시 해당 모든 시설을 완전히 철거하고 외국기업에 부지를 판매하는 것, 일부 시설을 남겨두고 활용하는 방법 등 활용 방안을 선택해야만 했다.”(뒤스부르크 환경공원 대외협력실 칼리노부스키 과장)

뒤스부르크시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공개 입찰을 진행했고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조경 전문가인 페터 라츠의 방안을 채택했다. 이 아이디어가 선택받은 이유는 “옛 시설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면서 시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칼리노부스키 과장은 “근무지와 주거지가 거의 같았던 시민들은 전반적으로 과거를 지키고자 했다. 기존 시설을 남겨 어떤 도시였는지,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싶어했다. 도시와 개인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의 의견은 구체적인 시설 활용 방안에도 지속적으로 반영됐다. 프로젝트 진행 당시 현장에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설계사에게 원하는 것을 주문했다.

 

▲ 학생들이 시설 내 원형통을 이용한 미끄럼틀 놀이시설을 이용하고 있

■ 공간에 대한 시민의 자부심이 원동력

현재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은 ‘공장 시설의 희소성과 기존 공간을 현대적으로 활용한 다양한 기능’으로 무장했다. 이 곳을 찾는 부류는 사진작가, 산업역사에 관심있는 사람,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 스킨스쿠버와 암벽등반 등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 각종 행사 참가자, 공연 관람객 등 다양하다. 이는 공간의 희소성과 다양한 기능을 방증한다.

구체적으로 축구장 250개를 합친 규모의 공장 부지 중 광산에는 나무를 심어 녹지화했다.

덕분에 오염된 산업도시를 정화시키는 한편, 살이있는 생태 교육장소가 됐다. 산업화 시대의 유물과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은 전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겨진 공장의 핵심시설은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전기를 생산했던 공장은 대규모 박람회장으로 사용한다. 각종 행사에 맞춰 인테리어가 가능하도록 조명과 냉난방 등 최소한의 시설만 리모델링한 상태다.

송풍기, 발전기, 모터 등 과거의 시설을 오롯이 노출시킨 또 다른 공장 건물은 결혼식, 공연장, 파티장소 등으로 임대한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이 건물 2층에 500석의 객석을 갖춘(가장 현대식 공간) 공연장 역시 6월부터 11월까지 콘서트 일정이 잡혀있을 정도로 인기다.

 

▲ 주민들이 철강 제철 시설의 벽면을 활용해 인공암벽등반을 즐기고 있다.

채굴장 일부는 과거 채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상영하는 등 산업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시설은 공장 부지의 높은 벽을 활용한 암벽등반장이다. 독일 알프스산악협회 뒤스부르크 지부가 관련 장비 대여 등 해당 시설물을 운영하고 있다.

프리트 헬름(65) 협회장은 “인근 25km 이내 지역에 실내 암벽장은 있지만 실외는 이곳뿐이어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며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외국인 이용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암벽등반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을 찾아 방문객 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 1994년 문을 연 해에만 방문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거주자 50만명보다 2배 가량 많은 사람들이 이 환경공원을 방문한 것이다.

올해에도 대규모 행사를 기획해 관광객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방문객 유치를 위해 6월에는 사진과 음악을 주제로 한 축제를 열고, 7월에는 영화제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시민 올리버 크노레(50)는 “이 공장부지가 이렇게까지 활용되고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으로 아무도 예상 못했을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시가 공간 활용 방안을 고민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는 올리버 크노레의 자부심은 도시가 되살아나고 성장하는 거대한 원동력이 됐다.

류설아기자

사진=추상철기자

칼리노부스키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과장

“도시는 거주자들과 함께 변화… 여전히 현재 진행형”

“모두 다 허물고 사무실 지구로 만들자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도시가 한 번의 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들과 함께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과거 전압실이었던 회의실에서 만난 칼리노부스키 뒤스부르크 환경 공원(란드샤프파크 뒤스부르크 노르트)의 대외협력실 과장은 인터뷰 내내 프로젝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운영 예산, 수익구조가 궁금하다.

운영은 대략 450만 유로가 필요하다. 1차적인 수익구조는 박람회장, 암벽등반장, 스킨스쿠버, 공연장 등의 임대 수입이다. 전체 운영 예산의 3분의 1을 충당할 수 있다.

또 다른 3분의 1 가량을 이 공장 부지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로부터 받는 월세로 활용한다. 현재 26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기업은 택시, 호텔, 요식업, 무대 설치 등에 관련된 전기 업체 등이다.

특정분야의 클러스트가 형성된 것은 아니며, 사무실만 둔 기업도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을 입주시켜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봤다. 나머지 운영예산은 주정부가 지원한다.

-운영 인력은 어떠한가.

행정 업무를 보는 직원이 15명인데, 이 중 공무원으로 파견된 직원이 6명이다. 공원 운영은 입주 기업이 참여하기 때문에 각 기억 직원까지 포함하면 공원 운영 인력을 350명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서 많은 관광객을 유입시켰지만, 제약 또는 난관도 있을 것 같다.

공장 부지로 오픈된 공간이다보니 안전사고가 가장 우려된다. 각종 시설이 노후돼 정부에서 요구하는 안전 규정을 지키는 것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전체 예산 중 시설 유지 비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행사 개최시 안전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소요되는 예산이다. 안전 관련 전담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가장 큰 난관이다.

-그럼에도 오래된 시설을 유지하는 만큼의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사람들이 뒤스부르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세시대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근대 시설이 관광 요소가 된 것이다. 또 이 시설들을 암병등반장이나 스킨스쿠버 연습장으로 활용하면서 이색적인 매력을 갖췄다. 성공적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많은 행사를 통해 시설을 보존한 가치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재생이 한창이다. 경험자로서 무엇을 강조하고 싶나.

새로운 도시나 공간을 조성할 때 단순히 기존의 것을 철거하고 새로운 것을 짓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공간이 갖고 있는 정체성, 도시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매주 방문객이 와서 ‘왜 이것을 그대로 두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 때 ‘과거와 현재, 미래는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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