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길목에서 에코뮤지엄을 말하다] 5. 경기도의 에코뮤지엄은 지금
[변화의 길목에서 에코뮤지엄을 말하다] 5. 경기도의 에코뮤지엄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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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없는 역사·생태박물관… DMZ·경기만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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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시흥시 소래염전에서 소금을 보관하던 창고. 40동이 군락을 이뤘으나 현재 단 2동만이 남아 있다. 그 중 시흥갯골공원에 창고로 전락했다가 ‘경기만 에코뮤지엄’과 만나면서 이달 초부터 위성박물관인 ‘시흥바라지 에코뮤지엄’으로 본격 활용하고 있다.
전국 각 지역마다 고유성이 존재하지만, 경기도만큼 무게감있는 지역성은 흔치 않다. 

그 중에서도 DMZ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남긴 인류 지성사의 한 단층이며, 경기만은 자연ㆍ역사ㆍ문화 자원을 간직한 보고(寶庫)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는 DMZ와 경기만 등을 거점으로 한 에코뮤지엄 조성에 나섰다. 첫 발을 뗀 각 프로젝트의 추진 배경과 현황을 살피고 ‘경기도형 에코뮤지엄’으로 성장하기 위한 동력을 제안한다. 

■ DMZ에코뮤지엄, 종합적이고 역동적 방안 수립해야
올 1월, 수십 년 동안 금지된 길 하나가 열렸다. 뼈아픈 한반도 분단의 표상, 민통선 철책길이 그것이다.

이 길은 군에서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철책을 설치하고 순찰했던 곳이다.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통일대교, 초평도, 임진나루를 거쳐 율곡습지공원까지 이어지는 약 9km 구간이다. 보안상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철책선보다 높은 나무도, 무성한 덤불도 없다. 

철책선 너머 1953년 7월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 체결과 동시에 출입통제 구역으로 자연상태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를 볼 수 있다.

길을 연 것은 예술작품이다. 경기관광공사는 2010년부터 민통선 철책에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DMZ의 안보, 생태, 문화예술 등을 연계한 관광콘텐츠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2010년 대학생 공모전을 통해 3개 작품을 설치, 현재 낡은 고무신에 새싹을 심어놓은 듯한 이미지의 <날으는 평화의 고무신>이 남아 있다. 이어 ‘155마일 예술 프로젝트’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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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 포격 훈련 피해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화성시 매향리 포탄기념관 앞, 임옥상 작가의 설치작 <매향리의 시간> 중 일부.
155마일은 한반도 군사분계선의 길이다. 이 프로젝트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국내외 미술 작가 30여 명의 예술작품이 철책선에 걸렸다. 현재 1일 1회, 10인 이상 시 출입 가능하며 신청은 홈페이지(imjingang.walkyourdmz.com)에서 하면 된다. 휴대폰으로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어플도 마련했다.

관광공사는 이 같은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을 토대로 ‘DMZ에코뮤지엄 거리’라고 명명, 통일이 되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관계자는 “임진각 생태 탐방로의 관광 콘텐츠가 좀 더 채워지면 독일이 베를린 장벽에 조성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처럼 세계적으로 유일한 예술ㆍ문화ㆍ역사ㆍ관광 콘텐츠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존돼 있는 생태 환경과 예술가들의 작품 설치라는 단선적 접근만으로는 ‘에코뮤지엄’으로 나아가기 어려워 보인다. 일련의 예술가에 의존한 도시 재생 사업에서 불거진 젠트리피케이션과 각종 부작용을 되풀이 하기 십상이다. 

가시적 성과로 내세우기 가장 쉬운 미술작품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다채로운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 배기동 국제박물관협의회 국가위원회 의장의 조언을 새겨들을 만 하다.
“DMZ는 20세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가 부딪혀 고착화된 인류 지성사의 한 단층으로 세계에서 유일하다”면서 “정치가, 행정가, 사상가, 고고학자, 생태학자 등 세계 전문가들이 모여 DMZ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자리를 마련해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 에코뮤지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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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만 에코뮤지엄의 첫 번째 컬렉션이 된 매향교회
■ 흔들리지 않는 활동 구심점 유지, 계획을 실현하는 시간 필요
경기만(京畿灣)은 경기도와 인천시의 서쪽 한강 하구를 중심으로 북쪽의 장산곶과 남쪽의 태안반도 사이에 있는 너비 100㎞, 해안선 528㎞의 반원형 만(灣)이다. 

너비 100㎞, 해안선 528㎞의 규모로 200여 개의 섬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평화로운 시기에는 교역의 바다, 위기상황에는 전쟁의 바다로, 역사의 현장이자 한반도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시흥, 안산, 화성 등 각 기초지자체마다 내륙 중심의 개발을 진행한 탓에 경기만의 연안(沿岸)지역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더욱이 각 지역마다 다양한 이유로 공동체 해체와 이탈 현상이 심화됐다. 

55년간 미 공군의 폭격 훈련으로 폭격기의 오폭에 따른 파괴와 소음 등 피해를 당했던 화성시 매향리, 일제강점기에 부랑아가 아님에도 붙잡혀 무자비한 폭행과 굶주림에 시달렸던 안산시 선감학원, 산업화에 사라진 소금창고와 자연 습지를 일부 보존하면서도 여전히 개발 압력에 시달리는 시흥시 갯골생태공원 등이 그 예다.

“경기도 연안도시들에 대한 정체성을 ‘평화’, ‘생명’, ‘통합’으로 재해석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야만 지역이 다시 살아나고 지속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경기창작센터 황순주 기획사업부장)

경기만의 재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방법론으로 ‘에코뮤지엄’을 선택한 이유다. 선감학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경기창작센터의 활성화와 대중화를 모색하던 중, 역사와 환경 등 경기만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경기만 에코뮤지엄’을 구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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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지역 특유의 염전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아이들
이제 막 시동을 건 ‘경기만 에코뮤지엄’은 심상치 않다. 수집과 연구, 전시 등의 박물관으로서의 기본 조건에 지역 내 유산을 현지 보전하는 장소성을 극대화하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에코뮤지엄의 요건들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최 구성부터 그렇다. 유럽에서는 에코뮤지엄의 주최 대부분이 10여 개 이상의 코뮌(기초지자체)의 연합체 형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치 혹은 경제 등 복합적 이유로 기초지자체 연합이나 공동 사업 추진 사례를 보기 드물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만 에코뮤지엄은 경기도와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 등의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공동 주최하면서 주목받았다. 이어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라는 전문가 집단과 각 지역의 주민 공동체들이 대등한 위치에서 사업 주관을 맡은 것 역시 유의미하다.

이들은 통합브랜드 개발, 에코뮤지엄 컬렉션 100선 선정, 연안길 복원 및 투어코스 개발, 연안문화자원을 활용한 교육체험 프로그램 개발 보급, 주민 역량강화 및 자발적 생활문화 지원 등의 사업을 함께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 선감학원의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는 경기창작센터를 거점박물관화하고, 각 지역의 거점이 될 위성뮤지엄 발굴 및 선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예로 최근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원생들이 기숙사에서 선감학원(현 경기창작센터)으로 향하는 옛길을 발견, 복원했다. 그 길에 컨테이너 3개동 규모의 공간을 마련해 역사를 대중에 알리는 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등 관련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화성시 매향리에는 경기만 에코뮤지엄의 첫번째 수집 유산이자 위성박물관이 될 ‘매향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다. 매향리 포탄전시관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보이는 건물로, 1958년에 건립됐다. 미군의 오폭으로 지붕은 파손되고 바로 옆 새 예배당이 건립되면서 방치돼 건물 안도 무너져 내린, 흉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난 5개월 여 동안 경기창작센터는 이기일 조각가와 함께 건물 골조와 주요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매향리 스튜디오로 재생했다. 앞으로 마을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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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코뮤지엄거리’에 설치된 이승구 작가의 <편견된 시선>
경기만 에코뮤지엄의 무지갯빛 미래를 예고하는 것은 시흥시 갯골생태공원이다.
갯골생태공원은 과거 시흥시 소래 염전의 증거물인 소금 창고와 염전, 지역 특유의 자연 환경인 습지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만 에코뮤지엄이 더해지면서 시설관리인의 창고로 쓰였던 소금 창고는 지역성을 쉽게 전달하는 위성박물관 ‘시흥바라지 에코뮤지엄’으로 탈바꿈했고 인근에는 자연 환경을 그대로 활용한 놀이터와 조형물을 조성해 운영하게 됐다.

무엇보다 운영자가 모두 지역 주민이다. 경기창작센터는 능동적 지역 주체를 찾는 데 공들였고, 20여 년 동안 시흥시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존을 주장해 온 활동가 강석환씨(시흥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등의 지역 주민이 운영자로 활동하게 됐다. 

현재 시흥시 지역NGO, 주민협의체, 문화예술가, 환경활동가, 행정기관 등으로 구성된 시흥시 바라지 에코뮤지엄 연구회까지 탄생한 상태다. 에코뮤지엄의 가장 중요한 축이 세워진 셈이다.

이처럼 탄탄한 토대 위에 지역에 대한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마중물로 예술가의 작품을 곁들이고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에 나섰다.

남은 것은 이 모든 계획을 실행하고 영글 시간, 기획자와 능동적 주민 등 구심점의 지속성이다. 이 요건들이 충족된다면 그 끝에는 전 세계가 부러워할 대한민국 대표 에코뮤지엄의 탄생을 그려봐도 좋을 듯 하다.

류설아기자
사진=김시범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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