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흐릿하지만… 생이별한 엄마를 찾아주세요”
“파주 캠프타운 여성이었던 우리 엄마, 꼭 찾아 주세요”
15일 오전 본보에 연속 보도되고 있는 ‘파주기지촌여성, 세상 밖으로 나오다’ 기사를 접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영애씨(43)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씨는 파주에서 70~80대 황혼기에 접어든 미군캠프타운 여성(기지촌 여성)들의 험난했던 생활상을 동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10년째 해오고 있다.
이날 기자에게 미국으로 입양돼 지금은 환갑을 갓 넘긴 혼혈인 등 3명의 사진과 입양 당시의 간단한 메모지도 함께 건네줬다. 조 작가는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을 넘긴 이들이 파주와 연관된 언론사의 협조를 받아 기지촌 여성이었던 엄마를 찾게 해 달라고 애절하게 요청해 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이름 백수지(45여), 안준석(51), 이영순씨(61여)가 그들이다. 백씨는 ‘캠프 불스아이’가 있던 장파리 출생이다. 엄마 백수원씨가 백씨를 낳은 직후 행방을 감춰 이를 딱히 여긴 장파리 주민들이 1년여를 키우다 ‘흑인혼혈아’라고 하도 놀림받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입양기관을 통해 1973년 7월 미국으로 보내졌다.
‘캠프 하우즈’가 있던 조리읍 오산리에서 태어난 안씨는 엄마 안정옥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만나고 싶어한다. 입양기록에 파주 주내리 태생으로 기록돼 있어 ‘캠프 게리오엔’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씨는 아예 엄마 이름조차 모르지만 육십을 넘긴 지금 생모를 애타게 찾고 있다.
지난 1953~2007년 사이 UN군으로 파주에 주둔했던 주한미군 7사단 포병대, 2보병 사단소속 캠프 하우즈 등 11개 캠프장병과 기지촌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혼혈아들이 엄마의 나라에서 ‘뿌리 찾기’에 나섰다.
백씨 등처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릴 적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왕따에다 이유도 모른 채 폭행까지 당해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아픈 기억을 마음 한 쪽에 묻어 둔 채 중년이 된 나이에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파주시와 파주문화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사진자료집 ‘분단 70 어머니의 품’에 따르면 한 때 4천500명에 육박했던 파주기지촌 여성은 현재 P씨(79) 등 300여 명이 파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혼혈자식을 뒀고 2~13세 나이가 되자 미국이나 스웨덴 등 유럽국가로 입양시켰다.
파주미국캠프조사 민간단체인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소장은 “60~70년대에 입양된 혼혈아들은 생모인 기지촌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자취를 감췄거나 가부장적 한국사회에서 견디지 못한 혼혈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생모가 선택한 입양이라는 포장을 통해 쫓겨가다시피 이 땅을 떠났다. 그 수가 4만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백씨처럼 고국을 떠났던 혼혈아들이 생모를 찾겠다고 나섰지만 여건상 쉽지가 않다. 우선 정부나 미군캠프가 있던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고 입양기록 자체도 열악하다. 특히 기지촌 여성들이 혼혈아에게 제2의 충격을 줄 것을 우려해 접촉을 꺼리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사정에도 파주에서 최근 2년간 시도한 생모 뿌리 찾기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파주 장파리에서 태어난 지 1년 만에 미국으로 입양된 흑인 혼혈의사 에스텔(62여)은 파주를 처음 방문한 2015년 10여 명을 비롯해 지난해 재차 방문해 10여 명 등 모두 20여 명을 상봉시켰다.
닥터 에스텔의 뿌리 찾기 방법은 2015년 9월 혼혈입양인인 세라 새비다키스(55여)와 캐서린 김(59여)이 중심이 돼 미국에서 조직된 비영리단체 325KAMRA(Korean Mixed-Race Adoptees)가 가진 입양 혼혈인 1천여 명의 DNA정보를 확보해 파주출신만을 골라 시도한 결과다.
입양혼혈인들은 10~20대 정체성 혼란기에 자신을 버렸던 조국을 한 때 잊었지만 분단된 조국과 기지촌 여성이었던 생모의 비애를 장성한 지금 이해하고 보고 싶어한다. 이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휴머니즘차원에서 실태 파악에 나서 기지촌 여성과 혼혈인 간 만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닥터에스텔과 동행했던 이용남 소장은 “모든 것이 열악할 당시 우리 사회가 혼혈아들을 버렸지만 이젠 국가가 나서 기지촌 여성 DNA를 확보, 입양자녀 DNA와 공유하는 등 보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주=김요섭기자 / 사진=현장사진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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