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홍성담의 ‘한라산-낳을 生’
[그림 읽어주는 남자] 홍성담의 ‘한라산-낳을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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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담, 한라산-낳을 생.2015

움부리는 ‘굼부리’로 화산분출로 생긴 움푹한 구멍이에요. 제주의 많은 오름에서 움부리를 볼 수 있죠. 또한 움부리는 여성을 비유해 ‘암메’, ‘도리암메’라고도 해요. 그 움부리에서 물이 솟기도 해 저지, 금능, 협재, 한림, 상명이 땅 밑 물길로 이어진다고 전하죠. 움부리 없는 오름은 숫오름이에요.

제주의 삼백 육심여 오름의 어머니는 한라산이죠. 그 한라산의 정상에 어머니의 암메, 즉 거대한 움부리가 있어요.

한라산은 두무악(頭無嶽)으로, 여장군(女將軍)으로도 불려요. 두무악은 머리가 없는 산을 뜻하는데, 그 이야기는 한 사냥꾼이 잘못해 활 끝으로 하늘님의 배꼽을 건드렸고, 이에 화가 난 하늘님이 산꼭대기를 뽑아 던져 버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해요. 뽑힌 것이 지금의 산방산이요,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죠.

18세기 유배인 임관주(任觀周)는 한라산과 백록담을 이렇게 노래한 바 있어요. “푸른 바다는 넓고 넓어 아득한데/ 한라산은 그 위에 떠 있네/ 흰 사슴과 신선이 기다리는/ 이제야 그 상봉에 올랐네.”

언 듯 이 그림은 아기 장수 설화를 연상케 해요. 가난한 집에서 겨드랑이에 날개 달린 한 아이가 태어났죠. 그 아이가 아기장수라는 거예요. 태어나자마다 날아다닐 뿐만 아니라 힘도 장사여서 훗날 큰 장군이 될 것이었지만, 부모는 도리어 큰 역적이 될 것을 두려워해 아이를 죽여요.

아이는 죽으면서 콩 닷 섬과 팥 닷 섬을 함께 묻어달라고 했어요. 관군이 아기장수의 소식을 듣고 잡으러 왔다가 죽은 것을 알고 무덤에 가보니 콩이 말로 변하고 팥은 군사로 변해 막 일어나려 하자 관군은 다시 아기장수를 죽이게 되죠. 그 뒤 아기장수를 태우러 온 용마가 주인을 찾지 못해 용소에 빠져 죽어요.

아기장수 이야기는 변혁의 꿈이 담긴 민중의 영웅설화예요. 그러나 미래 영웅의 탄생은 참으로 어이없이 현실에 안주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죠. 홍성담 작가의 작품은 그런 아기장수의 비극성을 극복하는 회화적 상상력으로 충만해요.

백록담(白鹿潭)을 풀면 ‘흰 사슴 못’이에요. 동아시아의 신화에서 흰 사슴 못의 상징은 거대한 자연의 치유를 상징해요. 영화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사슴 신(神) 시시가미를 생각해보세요. 작가는 이 치유의 못을 어머니의 암메로 상징화 해 아기장수 낳는 장면을 새겨 넣은 거예요.

불이 솟던 화산섬. 숱한 고난의 역사를 간직한 제주와 제주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의 슬픈 영혼들. 하늘의 때와 바다의 때, 그리고 제주의 시간 180만 년이 뭉쳐서 저 아이가 태어나는 게 아닐까요? 그러므로 저 아이는 이 땅의 신새벽을 여는 미륵일 거예요.

글_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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