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새처럼 만들어버리는 ‘상상력의 힘’
돌
―김광석金光石
한우진
공중에 돌이 떠 있다
사랑했을 뿐이다, 노래했을 뿐이다
돌 속에 든 등잔의 혈관이 터진다
죽은 심지에 노래를 댕긴
돌이 공중에 떠 있다
흐리거나말거나 밤낮으로 빛난다
《까마귀의 껍질》, 문학세계사, 2010.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이라 풀이되어 있지만,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 것처럼 속내가 시원치가 않다. 묻고 대답하는 말들의 오고감이 다 그렇게 후련치 않기에, 강압의 방편으로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자고 못 박아 약속한 게 사전적인 정의(定義)일 것이다. 사전은 소통의 매뉴얼이기도 하지만 말들의 감옥이기도 하다. 시어(詩語)는, 보편의 망치로 쾅쾅 못질이 되어 생명력을 잃은 언어들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는 특별한 말들이다. 생기란 상상력이다. 상상력에 의해 일상의 언어들은 불가해한 세계로 진입한다.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할 때 세상은 경이로운 장소가 된다. 상상력은 과학을 넘어선 과학이고, 이해를 넘어선 이해다. 상상력은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향’(反響)의 힘이 아니라 영혼을 뚫고 들어가 요동하는 ‘울림’의 힘이다.
한우진 시인의 <돌-김광석金光石>은 가수 김광석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의 시는 김광석에 대한 추모로 읽혀질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시의 저변을 맴도는 상상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공중에 돌이 떠 있다”는 첫 구절에서 불가해하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당혹의 느낌은 중력에 지배당하는 ‘돌’의 실체를 해체시켜 새처럼 만들어버림으로써 경이감을 준다. 이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피레네의 성’이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푸른 하늘에 우뚝 떠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바위는 상상력의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그의 바위는 너무 압도적이어서 어떨 때는 슬몃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한우진 시인의 돌은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그의 돌 속에는 불이 있다. ‘등잔의 혈관’이 터져 ‘죽은 심지’에 ‘노래’를 당기는 그의 돌은 ‘타는 돌’, 아니 ‘타는 심장’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검은 바위와는 사뭇 다른 인상이다. 오로지 사랑하고 노래했을 ‘뿐’인, 그래서 ‘흐리거나 말거나’ 홀로 공중에서 자기의 영혼(심장)을 태웠던 가수 김광석. 시인은 그를 통해 진정한 예술가의 초상이 무엇인지를 말하려 한다. 그것은 ‘돌 속에 든 등잔의 혈관’을 터트리며 공중에 떠있는 돌의 모습일 것이다.
합리성만 따지는 세상은 빈곤하다. 생각의 중력을 거슬러 새처럼 비상하는 상상력의 날개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생기를 잃어 피곤만 흥건할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틀어 당연하지 않을 것을 불쑥 내밀어 보일 때 세상은 한결 산뜻하고 청량해 질 것이라 믿는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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