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에 뿌리고 찢고… 고삐 풀린 졸업식 ‘위험수위’

막장졸업식 뒤풀이 근절책 없나

‘졸업(卒業)’.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치거나 어떤 일이나 기술, 학문 따위에 통달하여 익숙해짐을 뜻하는 용어다.

인생의 새 출발을 결정하는 중요행사 중 하나지만 최근에는 청소년 탈선과 각종 사고로 얼룩져 본 의미를 퇴색하고 있다.

매년 졸업시즌마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막장 졸업식의 실태를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본다.

 

● 밀가루, 계란 던지기 부터 알몸달리기까지… 막장 졸업식 실태

 

매년 2월 초부터 중순까지는 초·중·고교를 비롯, 대학교까지 전국의 각 학교마다 졸업식이 치러진다.

 

경건한 졸업 분위기는 어느학교나 비슷하지만 최근에는 세족식, 재학생·졸업생의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로 무장한 특색 졸업식으로 꾸며지고 있다.

 

문제는 일명 ‘졸업빵’으로 불리는 뒤풀이다.

 

껌이나 사탕을 강매하고 밀가루나 케첩, 계란 등의 음식물을 투척하는 것은 이젠 애교 수준이다.

 

‘복을 불어 넣는다(?)’며 소화기를 분사하고 옷을 찢는 것도 기본이며 집단으로 몽둥이 찜질을 하고 물에 빠뜨리기도 일쑤다.

 

최근에는 속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알몸으로 피라미드를 만드는 등 엽기적인 졸업식 뒤풀이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떠돌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30여명의 남녀 중학생들이 알몸으로 피라미드를 쌓는 등 졸업 추태를 부린 고양시 A중학교 졸업식 뒤풀이 동영상과 사진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정도다.

 

지난 13일부터 인터넷 사이트 등에 급속히 퍼진 이 동영상과 사진은 A중학교 학생 15명과 선배 고교생 20명이 지난 11일 졸업식을 마친 뒤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채 밀가루 계란, 케첩 등을 뒤집어 쓰고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담겼다.

 

일부 사진에는 중요 부위조차 가리지 않은 모습과 함께 학생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돼 있고, 실명과 나이를 비롯해 학교 이름까지 언급돼 있어 파장이 일었다.

 

이에 진상조사에 나선 경찰은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피해 중학생 15명을 조사한 결과 뒤풀이가 강압에 의해 이뤄졌으며 일부는 재학 중 선배들에게 여러 차례 돈을 빼앗겼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17일과 18일 가해 고교생 20명을 출석시켜 피해 학생들의 진술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며 조사를 마친 뒤 검찰과 협의를 거쳐 이번주 안에 형사처벌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또 알몸 뒤풀이 동영상과 사진 유포자에 대해서도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함에 따라 신원을 확인, 유포자를 조만간 조사하기로 했다.

 

● 경찰, 교육계 대책마련 급급

 

A중학교 등의 막장 졸업뒤풀이 사진과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와 각 포털사이트 등에는 가해학생들의 처벌하고 대책을 요구하는 누리꾼 등의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경찰과 도교육청 등도 대책을 속속 발표하고 나섰다.

 

먼저 경찰청은 졸업식 뒤풀이와 보복 폭력 등 학교 폭력이 증가함에 따라 다음달 초까지 예방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졸업식 시즌과 신학기가 이어지는 다음달 14일까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순찰을 강화하고 교육청 등 유관기관과 협조해 등하교 시간에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학교폭력 자진신고와 단속 활동도 종전의 연 단위에서 학기 단위로 늘리기로 했다.

 

이밖에도 범죄예방교실을 운영, 졸업시즌에 맞춰 경찰관이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 교실에 직접 찾아가, 지나친 ‘졸업식 뒤풀이’를 할 경우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로 했다.

 

특히 졸업시즌에는 학교 주변에 순찰차를 집중 배치해, ‘뒤풀이’ 명목으로 이뤄지는 학교 폭력을 예방할 계획이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지난 16일 직접 고양교육청을 방문해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교과부는 이번 사건을 심각한 학교 폭력으로 규정하고 재학생,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지지 않도록 신속하게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고양교육청을 진상조사한데이어 17~19일 사흘 동안에는 교과부 현장점검단을 각 시도 교육청에 파견해 졸업식과 관련한 추가 피해 사례는 없는지, 졸업식을 앞두고 일선 학교와 교육청의 준비상황은 철저했는지 등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또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의 졸업식 담당 장학관을 긴급 소집해 향후 예방책, 제도적 개선책 등을 논의한 뒤 늦어도 내주 중에는 건전한 학교 졸업식, 학교 폭력 근절 등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기도교육청도 지난 16일 중학교 알몸 졸업식과 관련, 비상대책협의회를 구성해 가해학생들에 대한 처벌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도교육청은 철저한 진상파악과 정신적 상담프로그램 마련을 포함한 피해 학생 보호방안, 가해 학생 선도 방안, 재발 방지 방안 등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 막장 졸업식, 진정한 해결방안은?

 

이렇게 각계가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늑장대처라는 비난의 소리도 높다.

 

졸업식 뒤풀이 문제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전통’으로 내려올 정도로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방활동 강화같은 평범한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 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학생들이 그동안 쌓인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졸업식이라는 출구를 통해 풀려고 하기 때문에 가해 학생이나 피해학생 모두 막장 뒤풀이에 큰 문제의식이나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현재의 청소년은 인터넷 등 현대문명을 적극 경험한 세대인 만큼 어른들의 시각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며 “변해가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폭력과 학교현상에 적합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더불어 학생 인성교육 강화방안을 교육과정상에 포함시키는 등 맞춤형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대 청소년학과 이광호 교수도 “성장 발달단계가 빨라지고 교육·사회적 환경이 바뀌면서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어린시절부터 겪게된다”며 “무한 경쟁교육이 계속되는 한 졸업빵이나 왕따 같은 사회문제가 계속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졸업식 시즌 뿐 아니라 학교나 경찰, 가정 등에서 항상 관심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모란기자 moran@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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