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고급문화가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화예술계에서는 퓨전이란 이름으로 고전문화에 대중적 요소를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왔다. 서구사회에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오페라와 대중음악이 만나 팝페라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3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상연된 넌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는 지난 2005년 초연 당시 대중문화로 상징되는 비보이와 고급문화의 대명사 발레가 만났다는 점에서 강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 중 하나다.
미국의 슬럼가에서 시작돼 대중문화의 주요 장르로 자리잡은 힙합은 쉽게 관객의 집중을 흡입하듯 끌어모으는 매력이 있다. 빠르고 리드미컬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비보이가 결합하면 그 시너지는 더욱 폭발한다. 여기에 정적이면서도 우아한 동작의 발레가 결합해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우연한 계기로 비보이를 짝사랑하게 된 발레리나가 프리마돈나라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비보이의 세계에 합류한다는 내용이다.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품은 발레와 비보이의 대결에서 비보이의 완승을 선언한다.
작품 전반에서 발레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장면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고, 비보이의 현란함을 강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한다. 분위기도 그렇다. 힙합광장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이어지고 활기찬 분위기가 연출되지만 발레리나 연습실에만 들어서면 내면의 갈등이 가득한 고뇌만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의문도 든다. 비보이가 발레리나를 보고 사랑에 빠져 발레리노가 되는 스토리는 왜 안 될까? 무대 위에서 비보이들에 의해 웃음거리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발레리나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편,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객석 분위기는 자유로웠다. 휴대전화는 잠시 꺼달라고 요청하는 여느 공연과 달리 주최측은 공연 중 전화통화를 해도 좋다고 알린다. 심지어 공연 장면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주면 감사하겠다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힙합의 자유로움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을 프로시니엄 형태의 대극장에서 모두 담아내기에는 버거워보이는 아쉬움도 남는다.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바짝 좁힌 소극장이나, 마당극이 열리는 광장 형태의 공연장이었다면 더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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