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직선제부터 먼저 고쳐야… 무너진 ‘교권신장’이 키워드
‘명품 경기교육’. 김진춘 前 교육감이 경기 교육의 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주창했던 슬로건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아직도 이 글귀가 새겨져 있는 도자기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 되어 있다.
경기도를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품 교육 1번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말이다. 교육감 시절, 인재 교육 등 다양성 있는 교육을 강조하면서 성과도 거뒀지만 ‘김포외고’ 문제 등 우여곡절도 함께 겪기도 한 김 전 교육감.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경기도의원이 아닌 전 교육감으로 불리길 원할 정도로 도 교육감으로 일했던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제5대 민선 도교육감이자 평생을 교육계에서 몸담아 온 경기 교육의 원로, 그를 만나 20년을 맞은 교육자치와 현 경기도 교육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들어봤다.
■ 교육감 선거 주민 직선제 방식, 이제는 바뀌어야
지난해 12월13일 오전 11시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은 온통 교육 관련 책들로 쌓여 있었다. 하지만 첫 눈길을 잡은 것은 책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글씨체를 담고 있는 한 도자기였다. 그 도자기에는 ‘명품 경기교육’이란 글귀가 선명했다.
김 전 교육감은 기자의 궁금증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도자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잠시 경기도 교육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대한 회상에 잠긴 듯 말문을 열지 않았다. 올해로 75세, 지난 50여년간의 교육자로서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그는 한껏 부드럽고 밝은 표정과 말투로 “명품 경기교육은 교육감 시절에 주창한 경기도 교육의 캐치프라이즈다. 학생들에게 맞춤형 명품 교육을 선보이자는 의미였지”라며 첫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잠시 도자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고 본격적인 경기교육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자 노구의 교육자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눈빛은 날카롭게 바뀌었고,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교육계의 원로로서 그는 작심한 듯 교육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놨다. 특히 교육 자치의 핵심인 교육감 선거와 관련, 현 주민직선 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감 선거제도는 크게 3단계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시군마다 있던 교육위원 24명이 교육감을 선출했는데 이것이 수가 적고 정파에 치우칠 가능성이 있어 교사 40%, 학부모 60%로 이뤄진 학교 운영위원 2만4천명이 투표를 하던 것이 2009년에 와서는 주민 직선이 됐지. 이러면서 교육감 선거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어”
교육 자치란 말은 허상
행정 조직과 달리 교육청 자체 예산없어
진정한 자치는 학교에서부터
도내 기초학력 3년 연속 꼴찌 안타까워
그동안 창의력ㆍ인성 길러졌나 의문
교육 통해 길러낸 세계적 인재야말로
대한민국의 힘 될 수 있어
그가 꼽은 주민 직선제의 문제는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교육감 후보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도지사, 시장 후보보다 떨어져 주민들이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교육인이 선거에 나서면서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후보들의 인기 영합주의가 판칠 수 있다는 우려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도지사-도교육감 러닝메이트 제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러닝메이트를 하더라도 교육보다는 정치 쪽에 무게가 쏠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교육감 직선제도, 러닝메이트제도 교육 본질에 맞는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자질 있는 교육감을 배출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결국 교육은 교육을 잘 아는 사람들이 펼쳐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실제 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교육 주체, 즉 교사와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김 전 교육감은 가감없이 교육자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놨다.
■ 현 경기도 교육 자치는 낙제점, ‘바뀐 것이 없다’
그는 우선 교육자치란 말 자체에 의문을 나타냈다. 현 제도 상에서 교육자치란 말은 허상에 불과하며, 지방자치처럼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이 좋아 교육자치이지, 교육감 선거를 직선으로 한다고 교육자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 행정조직과는 다르게 교육청은 자체 수입이 없다. 교육 과정도, 교과서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데 그 틀 안에서 자치를 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의 교육자치라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교육 주체인 학교, 운영위원회 등은 배제된 채 지금과 같은 수직적 구조에서 어떤 자치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진정한 교육 자치는 학교에서부터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교육자치의 본질이 교육감이 아닌 학교에 있다는 그의 말에 왠지모를 짙은 애정이 묻어났다.
그는 교육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교육은 정치와는 다르게 큰 틀에서의 변화가 일어나선 안된다. 결국 교육은 학생을 변화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이는 시대가 바뀌더라도 고수해야 하는 교육의 본질이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러한 그에게 현 경기도 교육자치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칼 같이 돌아온 ‘낙제점’이란 대답.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학생들의 권리는 강화됐지만, 의무와 책임은 없다. 교권은 무너지고 기초학력평가에서는 3년 연속 경기도가 꼴찌권을 차지했다.
수능 성적도 바닥권으로 고3 대학 진학률도 타 지역보다 떨어진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창의력과 인성이라도 길러야 하는데 이런 것은 어떻게 증명하나. 일선 학교에서도 도교육청 지시사항만 따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점수를 어떻게 매기나”
교육계 원로로서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나는듯 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앞으로 경기도 교육 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묻자 그는 이 사자성어를 제시했다.
“교육의 본질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 인류가 이제껏 이룩한 토대를 바탕으로 새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더불어 그는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인재를 교육을 통해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는 결국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가 세상을 이끌어 나갈 것이야. 교육을 통해 길러낸 세계적 인재야 말로 우리나라의 힘이 될 수 있어”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교권 신장. 교육의 본질인 ‘학생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교사가 학생을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단순하지만 뼈 있는 지적이다.
“교권은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힘이다. 소위 문제 학생이 있다면 이를 바꾸는 것은 경찰도, 상담사도 아닌 일선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세계속의 한국을 알리는 글로벌 인재들도 교사의 손을 통해 배출될 수 있어. 교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교육 자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이지”. 말을 맺는 김진춘 전 교육감의 표정에는 교육에 대한 강한 애착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관주기자 leekj5@kyeonggi.com
김진춘 前 도교육감 정책은 ‘1학교 1특색 만들기’ 핵심
김진춘 전 도교육감은 재직 시절 교육 다양성과 인재 교육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시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특성화고 활성화와 원어민 영어교사 확충으로 ‘외국어가 가능한 글로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경쟁을 통한 발전을 꾀하는 보수 성향의 교육인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 다양한 학생들에 맞춘 다양한 학교 만들기
김 전 교육감이 대표적으로 꼽은 정책은 바로 ‘1학교 1특색 만들기’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 소질에 맞춰 학교 교육도 다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학교의 다양화를 추진했다.
하나의 학교마다 하나의 특색을 만들어 학생들이 해당 특색에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학교에서는 특색에 맞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소질을 계발토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이스터高 등 특성화高 활성화
외국어 가능 글로벌 인재양성 주력
이러한 대표적인 학교가 바로 ‘마이스터고’다. 자동차, 기계, 선박 등에 특성화된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 관련 회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위학교 내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에 학교 체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글로벌 인재 양성 교육
미래는 ‘인재’들이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 김 전 교육감의 일관된 교육 지론이다. 세계적인 인재를 키우려면 외국어 능력은 필수라는 그의 생각은 도교육감 재직 시절 외국어고 12개 신설, 원어민 영어교사 확충 등으로 이어졌다.
또 국가의 성장 동력을 길러내기 위한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 영재학교 신설 등으로 가시화됐다. 또 학교 시설 현대화를 통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이러한 인재 양성 교육에 필요한 사항으로 추진했다.
이관주기자 leekj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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